7. 기록의 소중함

< 2장 > 소중한 삶을 전하려 합니다.

by 이유진

아이들의 사진 정리를 하는 것은 일종의 과제처럼 되었다. 분기별로 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다 보면 결국 6개월에 한 번 정도 하게 된다. 인화보다는 사이트를 이용하여 사진 책을 만드는 편인데, 한 번씩 몰아서 하다 보니 여간 시간을 잡아먹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앨범이나 사진 보관을 위한 여타 다른 도구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아직은 이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사진 책으로 만들어 두면 좋은 점은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 보면서 지난날들을 추억할 수 있고, 아이들 역시 자기의 사진을 보면서 굉장히 즐거워한다. 그나저나 아직 해야 할 사진 정리가 많이 남아있어 쌓여가는 사진을 볼 때마다 언제 하나 걱정만 한가득이다. 그저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하면 되는 것을 말이다.


근래에 들어 가장 후회되는 일 중의 하나는 내 추억에 대한 저장고가 없다는 사실이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 여행을 종종 다니면서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정작 그 사진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휴대폰으로 찍었던 무수한 사진들은 인화되지 못한 채 usb 어딘가에 들어있을 것인데 그것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부모님과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때 가서 찍었던 사진들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지만 지금에 와서 찾으려니 어디에 저장해 두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해서 사진을 볼 수가 없다. 늘 정리해야지 정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결국 손쓰기에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질 만큼 큰일이 되었다. 한 번 날을 잡아서 모든 사진들을 찾아보고 정리해야지 싶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 사진 정리하는 것으로 이미 지쳐버린 나는 내 지난 사진까지 정리할 여력이 현재로서는 없다. 그 당시에 정리하지 못했던 것이 이렇게 후회가 될 줄은 몰랐다.


대학 동기 친구들 5명이서 아직도 모임을 한다. 우리 대부분이 SNS를 즐겨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 가운데 우리보다 나이가 많았던 언니 한 명이 그 시절부터 싸이월드를 열심히 해 오셨다. 반면 언니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주로 언니가 올린 사진을 보면서 우리가 이런 걸 했구나 추억하는데 그쳤다. 언니는 싸이월드가 사라진 지금 다른 매체를 통해 사진을 꾸준히 업로드하시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수고스러운 그 일을 꾸준히 하고 계신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언니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서 혹은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를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자기 삶의 기록'을 위해 '우리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언니는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도 언니 덕분에 그 시절의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우리가 함께 했던 일들을 추억할 수 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SNS를 싫어했다. SNS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내가 좋을 때든 내가 안 좋을 때든 그것을 통해 누군가에게 나의 일상을 공개한다는 자체가 낯설었고 부담스러웠다. 내가 하는 것들 중에서 좋은 것들은 뭔가 자랑하는 것 같고 잘난 체한다고 생각되어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내가 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타인의 혹은 지인의 좋은 모습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도 싫었다.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런저런 판단을 할 것 같아서 더 싫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편협한 사고에 갇혀 SNS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더 중요한 가치는 생각하지 않은 채, 내가 그 세계에서 인기인이 될 수 없다고 단정지은채, 나의 삶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더 우위에 두고 SNS와는 먼 삶을 살아왔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쥐고 살면서 스마트 폰의 최대 활용지인 SNS를 멀리 했으니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SNS는 일종의 기록의 도구이다. 어찌 보면 기록을 굉장히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매체인 것이다. 기록을 못해 아쉬움이 한가득인 요즘이라 그런지 이제야 SNS의 순기능에 대해 조금씩 엿보게 된다. 기록을 못한 아쉬움은 참 많다. 학창 시절의 추억을 제하고도 특히 지난날, 학교 생활에 대한 기록물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아이들에게 일기를 묶어 책으로 만들어 준 적이 두 번 있었다. 3, 5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였는데, 평소에 일기를 열심히 쓴 친구들은 꽤 묵직한 책 한 권이 만들어졌다. 그 일기에는 다양한 것들이 포함되었다. 그냥 일기를 비롯하여 내가 제시한 주제로 쓴 일기, 독서토론 일지, 독후감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된 개개인의 글쓰기 노트였다. 보통 1여 년 치 쓰면 (기본 줄 공책으로) 많이 쓴 친구는 대략 5-6권 정도 나오고 적게 쓴 친구는 2-3권에 그치지만 어찌 됐든 제본해서 하나로 묶어주면 그럴싸한 책 한 권이 완성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책 쓰기 작업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들이 매일 기록한 것 들을 모아서 하나로 묶었으니 (비록 한 가지 주제에 관한 것은 아니었을 지라도) 본인의 지난 1년 생활을 돌아보기에 훌륭한 자료가 되었음에는 틀림없다. 제본은 업체에 맡겨서 하는데, 직접 찾아가서 의뢰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 외에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앞으로도 복직하면 이 작업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연수에 가서 강의를 듣다가 그 강사 선생님이 하는 작업을 조금 변형해서 해 본 것이었다. 이를 잘 활용하여 꾸준히 그런 작업을 해 나간다면 이후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포트폴리오 처럼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그 결과물을 갖고 있지만 나는 그 결과물이 없다는 것이다. 사진은 찍어두었지만 그 사진은 또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 자료들을 작업하는 과정과 또 그렇게 만든 아이들의 결과물을 블로그를 통해 혹은 다른 SNS 매체를 통해서 잘 기록해 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뿐만 아니라 그것을 경험한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었다 생각하니 참 아쉽다. 내가 작업한 것들을 보면서 자기들도 한 번의 경험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가 또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도 있지 않았을까? 책 만들기 작업은 복직하면 재개할 것이고, 이번에는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다짐한다. 또 그 기록을 통해 어떤 효과가 있을 지도 잘 기록해야겠다는 계획이 있다.


기록을 못한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아쉬움은 학예 발표회이다. 5학년 아이들과 2학년 아이들이 학예회를 할 때 강당을 통해 큰 발표회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라 이래저래 준비를 많이 하고 연습도 많이 했다. 2학년 아이들을 데리고는 연극을 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쓴 대본을 썼고 소품들도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사진과 파일들은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찾고자 한다면 어떻게 든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아이들이 중간중간 연습했던 장면들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해 두었는데, 그런 자료들이라도 SNS를 통해 업로드 해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5학년 아이들과는 발목 줄넘기를 통한 점프 뛰기를 했다. 내가 직접 안무도 다 짜고, 노래 편집도 했다. 물론 결과물 영상 하나는 있다. 그것이 전부다. 다른 것들이 없다. 아이들과 준비하면서 즐겁고 힘들었던 과정들에 대한 기록은 없다. 내가 만들면서 수정한 과정에 대한 기록물은 흔적조차 없다. 그것들을 유튜브나 영상을 올리는 매체를 통해 올려두었으면 어땠을까? 우선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아이들이 단순히 학부모님들 앞에서만 발표한 것이 아닌 전 세계인(?)을 상대로 무대 경험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경험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지금 이렇게 아쉬워하는 이유는 그 영상을 내가 지금 올리려면 아이들의 동의 혹은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제서 그 동의를 받기에는 실질적으로 너무 많은 수고와 힘이 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학급을 운영할 당시에는 학교 홈페이지에서 운영하는 학급 홈페이지에 아이들 학교 사진이나 이것저것 자료들을 종종 올리지만 그마저도 1년이 지나면 모두 삭제돼버린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쉽다. 너무 아까운 자료들이 많다. 그 과정들을 내 블로그를 통해 기록해 두었다면 나에게 큰 자료로 남았을 뿐 아니라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도 좋은 기록으로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usb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걸 언제 찾아볼까 싶지만 있기는 있다. 자료 정리를 제대로 할 줄 모르는 나에게 SNS라는 매체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었을 텐데 지금에서야 그것을 알게 되어 참으로 아쉽다. 아이들 역시 본인들이 그런 과정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없으니 내가 당시에 조금만 수고를 들여 만들어 두었더라면 언제든 두고두고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참 아쉬움만 한 가득이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겠지? 앞으로 복직하게 되면 지금 운영하는 블로그에 내가 운영하는 학급에 관해 카테고리를 하나 만들어 둘 것이다. 나와 아이들 그리고 학부모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우리의 추억을 하나 씩 저장해 두려고 한다.




출력하지 않아도 따로 저장공간을 내지 않아도 영원히 보관할 수 있다는 힘. 정말 신기하고도 놀라운 일이다. 사이버 세상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지금 블로그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면서 내가 알고 있었던 사이버 세상은 정말 단편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이것이 보통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많은 정보가 지천인데 왜 사람들이 굳이 시간을 내서 블로그를 운영하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나는 그것을 최대한 잘 활용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아니다. 다른 사람의 정보를 활용만 하는 것과 내가 유용한 정보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실로 큰 차이가 있다. 딱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만들어 내지 못하더라도 기록의 저장고이자 매체로서 블로그는 큰 가치가 있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내가 하고자 하면 앉은자리에서 손쉽게 하나의 정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것을 통해 나는 정보의 생산자가 될 수도 있고, 정보의 전달자가 될 수도 있다.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것이 소수의 사람들에게 특정된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굉장히 특별한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런 것을 알려주고 싶다. 세상은 점차 바뀌어가고 있으며 단편적인 지식의 습득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곳이 되었다. 이들이 살아갈 무대는 작은 교실, 학교, 대한민국에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전 세계가 그 무대가 되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든 누구이든지 될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가수가 되어야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시도를 하면 가수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사이버 공간, 인터넷 세상에서는 그것이 가능한 일이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과연 우리 아이들이 이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고 있을 것이며 부모들 역시 얼마나 이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을 것인가? 나 역시 내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도 없는 일이기에 이런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감히 짐작이 간다.


앞으로 이것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다루게 되겠지만 지금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삶에 대한 기록의 필요성이다. 일기든, 사진이든 무엇이든 우리 삶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일상의 작은 기록이, 나의 작은 생각이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나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는 것임을 힘주어 말하고 싶다.



*표지 사진 : Photo by Galymzhan Abdugalimov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