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나의 아이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

< 2장 > 소중한 삶을 전하려 합니다.

by 이유진

아이들 밥을 먹이다 보면 전쟁통이 따로 없다. 첫째는 일단 물고 있고, 한 2-3 숟갈 먹고 나서부터는 먹는 게 싫어지는 눈치다. ‘곰돌이는 어딨어요?’, ‘이불은 어딨어요?’와 같은 핑계를 대며 몇 번이고 자리를 이탈한다. 결국 이불과 곰돌이를 끌어안은 채 밥을 입에 물고 나의 잔소리 폭격을 듣게 된다. 그걸 보고 있노라면 정말 속이 터진다는 말이 뭔지 실감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둘째는 소위 식탐이 있는 편이라 먹을 것에 관심이 많다. 입에 들어가면 대부분은 씹어 삼킨다. 문제는 밥을 먹으면서 호기심이 너무 많이 발동한다는 것이다. 고집도 세지고 스스로 먹겠다는 의지가 강해져 숟가락을 들고 있는 대로 식판 안에 있는 음식들을 휘저어 댄다. 보다 못해 숟가락을 뺏으면 손으로 국이며 반찬이며 가릴 것 없이 주물럭대거나 휘저어 댄다. 얼마 못가 식탁 주변으로 온통 밥풀이며, 반찬 부스러기들이 줄줄줄... 그야말로 난장판이 벌어진다. 이제는 스스로 밥 먹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기라 그대로 두어야 싶다가도 결국 중단시키게 된다. 밥 한 번 먹고 나면 치워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하루에도 열두 번도 넘게 고민하게 된다. 힘이 든다는 말이다.


“아야!”


악 소리가 절로 났다. 뭔가 싶어서 보니 첫째 아이 장난감이다. 뾰족한 부분이 발바닥 한가운데에 꼭 찍혀 버렸다. 너무 아파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주변에 온통 장난감 투성이다. 어지르기에만 급급하고 정리할 줄 모르는 아이에게 화가 났다. 방에서만 장난감을 갖고 놀라고 하지만 어느새 거실이며 주방이며 곳곳에 장난감이 널브러져 있다. 정말 신기한 노릇이다. 그나마 내가 밟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화부터 내게 된다. 아이는 치우는 듯 마는 듯하면서 “엄마 많이 아파요? 시완이가 호 해줄게.”라며 호 하는 시늉을 한다. 그러고는 스리슬쩍 사라진다. 갈수록 꾀만 느는 것 같다. 정리 좀 같이 하자고 말하면 몇 번 줍고 만다. 그 모습에 화가 나서 다음에는 장난감 못 만지게 해야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면 그제야 알겠다는듯 겨우 정리하는 척 몸을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둘째가 다른 장난감 통을 엎고 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어린이집에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첫째가 똥을 싼다. 엉덩이를 씻기고 나면 얼른 물기를 닦고 로션을 바른 뒤 옷을 입혀야 하는데, 옷을 가지러 가면 그때부터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어서 옷 입고 가야 한다고 몇 번을 불러도 오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책에 꽂혀서는 요지부동이다. 어서 와서 옷 입으라고 계속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폭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참다 참다 결국 소리친다. 그제야 쭈뼛쭈뼛 다가오는 첫째와 뭐라고 하나 싶은 얼굴로 뚱하니 쳐다보는 둘째. 지금 또 내가 뭐한 건가 후회가 일지만 일단은 빠르게 옷을 입힌다. 물론 내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아이 쪽으로 가서 옷을 입히는 경우도 있다. 거의 10번 중에 8번은 그렇게 한다. 하지만 나도 화가 나고 짜증 날 때에는 결국 소리치게 되면서 일이 종료된다.


문득 한근태 작가님 강연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엄마 말만 고분고분 잘 듣는 애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질문을 했던 엄마도, 그리고 앉아있던 사람들도 순간 침묵했다. 잠시 뒤,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건 아닌데 싶었다. 순간 정말 충격이었다. 나와 같은 모습으로 자라는 것이 싫었는데, 나는 왜 우리 아이가 내 말을 안 듣는다고 그리 화를 내고 있었단 말인가? 우리 아이가 내가 시키는 대로 혹은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사람이 되는 것은 싫다.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바라는 모습에 자신을 끼워 맞춰 살아가는 겉모습만 모범생인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느냐며 소리치고 있는 것인가? 정작 순응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은 싫으면서 순응하지 않는다고 소리치는 내가 이중인격자 같았다.




잔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 남편만 봐도 잔소리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특히나 내 직업이 교사라는 것 때문에 남편은 그 점을 유난히 싫어했다. 내가 본인한테도 선생님처럼 지시하려고 드는 것 같단다. (뭐, 일부 인정하는 바이지만 내가 하는 말을 그렇게 듣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섭섭하기도 하다.)


나 역시 잔소리 듣는 것이 싫은 사람이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우리 집에는 크게 잔소리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 아빠가 나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방 좀 치우라는 것, 정리 정돈을 좀 하라는 것이 유일했다. 엄마야 잔소리에 워낙 통달하신 분이라 사소한 언급은 있으셨지만 내가 하는 일에 있어 일거수일투족 뭐라 하지는 않으셨다.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땐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지만 그 외에 본인들이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하신 적은 없었다고 기억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한 때, (다른 치마 바람 엄마들처럼) 왜 나를 더 공부시키려 애쓰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지만 나는 직업 특성상, 혹은 나의 성격상 아이들에게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게 된다. 특히 학교에서 공부 안 하는 아이들을 보며 잔소리를 많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그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을까 싶다.


‘헬리콥터 맘’에 관한 기사를 읽고 아이들이게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헬리콥터 맘은 비행기보다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헬리콥터처럼 항시 아이 가까이에서 대기하는 엄마를 말하는데, 대학 갈 때까지 엄마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며 모든 스케줄을 관리한다.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도 엄마가 아이 수업 시간표를 짜주고 수강신청까지 대신 해준 다는 기사를 읽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아이들은 '그건 너무하다'라는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들으며 짐짓 놀라 했지만 본인들의 엄마 중에서도 그러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까?


엄마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나는 과연 어떤 엄마이며 어떤 선생님인가? 나의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가? 요즘 들어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이다.


부모는 당연히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고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당연한 말이다. 부모의 모든 희생과 노력은 과히 자식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결혼을 해서도 A/S가 필요하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세상이다. 부모는 자식을 도대체 언제까지 케어해야 하는 것인가? 제목은 기억나지 않는 어떤 책에서 읽었던 내용 중에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책에서는 자식이 성인이 되면 부모와 자식은 멀리 떨어져 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즉 아이가 독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책에서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같은 사이라고 정의했다. 1년에 두어 번, 명절이나 생일 즈음 만나서 서로 반갑게 맞이하고 즐겁게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로 정의할 수 있는 사이. 외국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랜만이야 잘 지냈니?'라고 인사할 수 있는 사이. 일부 동의했지만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게 가능한 일일까 싶었다. 미국처럼 땅이 넓은 나라라면 부모 자식 간에 떨어져 살게 되었을 때, 저럴 수밖에 없겠다 싶었지만 고속 열차로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에 접어든 우리나라에서 과연?이라는 의문이 드는 게 당연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올바른 관계란 과연 무엇일까? 근래에 들어 자꾸 하게 되는 질문이다. 부모가 바라는 관계와 자식이 바라는 관계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조율을 위한 소통이 필수불가결이라 여겨졌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남들 하는 만큼 살 수 있도록 혹은 그보다 더 잘 난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아빠와 엄마는 뼈 빠지게 일하고 아이를 가르친다. 절대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나 역시 우리 아이들이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내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그렇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부모가 일거수일투족 간섭하여 남들이 원하는 기준의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기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부모가 시키는 대로만 고분고분 따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고, 결정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기를 기대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다른 사람과 어울리되 그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 일을 고수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한다. 더 나아가 본인이 원하고 바라는 일이 세상을 이롭고 더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고 생각한다.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기에 부모가 혹은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이끌어 주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그렇게 자랄 수 있다고 여긴다.


비단 나의 아이들만이 아니다. 내가 만나게 될 우리 아이들 역시 그렇게 자라기를 바란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꿈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삶에서 진정 가치 있고 정의로운 일을 선택하고 나와 타인을 위한 마음으로 세상에 도전할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기를 소망한다.





* 표지 사진 : Photo by Kyle Johns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