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아이를 낳으면서

< 2 장 > 소중한 삶을 전하려 합니다.

by 이유진

‘악, 이렇게 아픈데 둘째는 어떻게 낳아?’


첫째 출산 과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저렇다. 나는 아파서 죽을 것 같으면서도 힘을 주는 내내 둘째를 어떻게 낳을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쨌든 둘은 낳아야 한다는 확고한 생각이 고통 속에서도 피어났다. 결국 분만실에서 출산을 실패한 나는 수술실로 옮겨졌다. 담당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한 번 만 더 힘줘보고 안되면 수술하자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분만실과 달리 수술실은 말 그대로 수술실이었다. 공기부터 차가웠다.


“자, 엄마 마지막으로 힘내 봐요. 하나, 둘, 세엣..... 됐어 됐어..! 잘했어요..!”


정말 얼굴이 터져라 힘을 주었다. 마음속으로 진짜 마지막을 외치며 힘을 주었다. 그 이후로는 잠시 기절한 것 같다. 그렇게 첫째를 낳았고, 분만실에서 나온 나는 어머니께서 너무 놀라셨다고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 얼굴은 팅팅 붓고, 너무 힘을 준 탓인지 얼굴과 눈의 실핏줄이 터져서 정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단다. 눈물지으며 말씀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도 눈물이 났다. 첫째를 낳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다. 무통주사를 맞았지만 크게 효과가 없었다. 도대체 주사 없이 그냥 낳았다는 엄마들은 어떻게 나은 걸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힘들었던 기억이 한가득이다.


자연분만을 했지만 너무 힘들었던 탓인지 소변줄을 꽂아야만 했다. 왜 옛날 사람들이 아기 낳다가 많이 죽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지금은 병원에서 모든 사태를 대비한 상황에서 아기를 낳지만 그 당시엔 그냥 집에서 아기를 낳았을 테니 너무 위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물론 자연주의 출산으로 집에서 아기를 낳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그것은 옆에서 의사가 대기하고 있는 굉장히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출산이라고 알고 있다. 뭐가 됐든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로 ‘밭에서 일하다가도 애를 낳는다’는 말은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만큼 나는 애를 낳는 것이 힘들었다.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둘째는 더 쉽게 나온다던 친구들의 조언과 인터넷에서 읽었던 수많은 둘째 출산 후기들은 나와 딱히 들어맞지 않았다. 첫째와 비슷한 시간에 병원에 가서 분만한 시간도 겨우 2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첫째도 둘째도 출산이 모두 힘들었다.


다들 뱃속에 들어있을 때가 좋을 때라고 이야기한다. 그 말에 일부 동의하지만 난 차라리 출산 후가 낫다. 물론 출산 전과 후는 비교하기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아이가 뱃속에 있는 상태가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나의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 아이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아무리 작은 잘못된 것도 하면 안 될 것 같은 압박을 느꼈다. 그 스트레스가 힘들었다. 안 먹으면 좋을 것을 굳이 먹으려고 하고, 좋은 책을 보거나 태교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며 소리쳤다. 그래서 임신한 기간 동안 마음이 내내 힘들었다. 괜히 불안한 마음에 늘 인터넷 검색으로 다른 사람의 후기만 찾아보며 나는 왜 이렇게 하지 못하고 있나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정작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자책하며 말이다. 게다가 둘째는 입덧 때문에 더 힘들었다. 안 먹으면 안 먹는대로 불편하고, 뭘 먹어도 만족스럽지 않은 불편한 기간이 한동안 이어졌는데 정말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성별의 여부에 관심도 없었는데 그런 나와는 달리 첫째 때와 달리 입덧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둘째는 딸인가 보다 하며 좋아하셨다. 첫째가 아들이어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은 딸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내심 딸을 바라던 남편의 기대와 달리 현재 나는 아들 둘 엄마다.




임신을 하면서부터 교실에서의 아이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학부모 상담할 때 종종 나를 가르치려 하셨던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가 됐다. 아직 결혼 안 한 아가씨 선생님을 대하면서 아마 기대 반 우려 반 이셨을 것이다. 사람이라는 게 그 입장에 놓이게 되니 새로운 눈이 띄인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첫째를 가졌을 당시 3학년 담임을 맡게 됐는데, 당시 아이들이 정말 귀여웠다. 말썽꾸러기부터 해서 굉장히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까지 정말 다양한 아이들이 있었다. 임신한 탓이었는지 유난히 모든 아이들이 참 예뻐 보였던 해였다. 내가 한 번 씩 화를 내고 소리를 칠 때마다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우리 아이가 나중에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이렇게 혼이 나면 얼마나 속이 상할까. 혹은 아들이라는 것을 알아서였을까. 천방지축으로 날고뛰는 남자아이들을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중에 우리 아이도 저러면 선생님이 얼마나 힘드실까 등등.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남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임신 전과는 확연히 다른 생각을 하면서 아이들을 보니 예전보다는 화를 내거나 소리치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다.


그 당시 출산하고 이 아이들을 어쨌든 내 손에서 떠나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2월에 다시 출근을 했다. 아이들이 아기를 보여 달라고 성화여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선생님, 아기가 너무 귀여워요!" 하고 소리치는 모습들이 더 귀여웠다.


“얘들아, 너희도 이런 때가 있었잖아요. 지금 이 아기처럼 바라만 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시절이 너희한테도 있었다는 것을 꼭 기억하세요. 여러분은 축복 속에서 태어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당시 3학년이었던 아이들이 이 말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싶지만 그래도 몇몇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든 못하는 아이든, 달리기를 잘하든 아니든, 리코더를 잘 불든 못 불든 모든 아이들은 태어났을 당시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로부터 탄생의 축복을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저 웃는 것 만으로, 우는 것 만으로, 쉬를 하는 것만으로도 ‘아구 잘했다’라는 말을 듣다가 어느 순간부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순간이 찾아온다. 왜 이런 걸까. 나 역시도 아직 어린 둘째에게는 모든 것이 관대한데 이제 갓 36개월이 지난 첫째에게 마치 이미 다 큰 아이한테 하듯 잔소리를 하거나 혼을 낸다. 훈육이 필요할 시기이긴 하지만 가끔은 내가 생각해도 이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에게 뭐라고 할 때가 있다. 엄마들이 아이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쓴다는 말을 듣고 난 뒤부터는 늘 자신을 뒤돌아 보고 경계하게 된다.


티비를 끊고 나니 아이에게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까 싶어 ‘라이온 킹’을 떠올렸다. 아직 보여주지 못한 상태다. 아직 그 영상을 보기에 너무 어린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다. 게다가 아직 두 돌도 안된 둘째가 있기 때문에 혼자서만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문득 이 작은 아이들도 보고 느끼는 것이 있을 터인데, 아이들을 그 자체로 존중해 주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우리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이 될 것이다. 만약 아이별로 보여주어야 할 영상물이 정해져 있다면 그 기준은 아마 아이들의 인지능력을 기초로 하는 것인데, 전체 관람가로 정해진 영상물이라면 조심스럽게 접근해 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른에게 좋지 않은 것은 아이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고, 아이에게 좋지 않은 것이라면 어른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다. 굉장히 기본적인 것을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다. 만 19세가 지났다고 해서 성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성인의 기준으로 삼아 술이며 담배에 대한 판매를 허용한다. 티비를 끊고,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와 멀어져 살고 있지만 크게 들리는 뉴스들이 있다. 좋아했던 연예인이었는데, 결국 안 좋은 일로 기사가 난 것을 보고 사람의 가치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또 한 번 깨달았다. 옳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잣대. 가장 중요하지만 기본적인 것이 잡혀 있지 않아 발생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옳은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수반하는 과정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개인에 대한 책임을 지는 동시에 사회에 대한 일정한 의무를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about a boy’에서 잊지 못하는 대사가 있다. ‘No man is an island’ 즉, ‘어떤 사람도 섬은 아니다.’ 우리는 크건 작건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산다. 나의 작은 말 한마디가 우리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 반성하는 일이 많아졌다. 특히 ‘아이 앞에서는 찬물도 마시지 말라’고 하던 옛 어른들의 말씀이 무슨 말인지 절실히 알게 되었다. 부모의 작은 습관과 언행은 아이가 그대로 물려받는다. 좋든 싫든 그것이 사실이다. 점차 의식이 생기면서 자신의 안 좋은 습관들을 고쳐가려는 때가 찾아오겠지만 그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며 여간해서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미리 좋은 습관을 길러 아이에게 본보기가 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부모가 담배를 피우면 아이가 담배를 필 확률은 흡연하지 않은 부모를 둔 아이들에 비해 3배 이상이라고 한다. (미국 퍼듀 대학, 펜실베이니아 대학 연구 2013 소아과학 학회지 개재) 이 말은 부모가 책을 읽고 운동을 하는 좋은 습관을 갖고 있다면 그렇지 않은 부모에 비해 좋은 습관을 갖게 될 확률이 3배 이상이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빌 게이츠, 마윈, 엘론 머스크처럼 누군가는 인류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주며 본인의 부와 명예도 쟁취한 사람이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역시 모두가 태어났을 당시 누군가로부터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사람들이 아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좀 더 의미 있는 삶이 있다. 어떤 대단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굉장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고 축복이 되는 존재였다. 왜 우리에게 주어졌던 그 축복을 잊어버린 채 혹은 우리 아이들에게 주었던 온 우주의 기운을 벌써 잊어버린 채 우리는 그저 그런 날들을 살아가게 된 것일까.


아이를 낳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좀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멋진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우리 아이가 내가 부모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표지 사진 : Photo by Miguel Brun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