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장 > 소중한 삶을 전하려 합니다.
누구나 아파보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된다. 나는 3년간 디스크를 앓았다. 고등학교 때 작은 담벼락을 넘다가 아차 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때 허리를 다쳤던 것인지 이후로 허리 통증을 간간히 느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허리 부상은 재수를 하면서 악화됐던 것 같다. 운동은 전혀 하지 못한 채로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엄청 길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대가로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동시에 ‘디스크’라는 무서운 진단도 내려졌다. 그렇게 디스크와 나의 전쟁은 시작됐다.
막연히 수술이 두려워 수술받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물론 병원에서도 수술은 권하지 않았다. 젊은 나이였기 때문에 운동과 물리치료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디스크 수술을 받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 역시 나에게 수술은 권하지 않았다. 본인 수술이 잘 안된 것 같다고 더 아파하는 친구를 보며 막연히 병원 가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주로 한의원을 다녔다. 열심히 한의원을 다니며 침을 맞았고, 물리치료를 받았다. 봉침부터 아주 긴 침까지, 세상에 온갖 침은 다 맞은 것 같다. 한의사 선생님에 따라 침을 놓는 스타일도 달랐다. 그렇게 한의원을 참새 방앗간처럼 드나들었다.
디스크라는 것은 늘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좀 덜 아픈 날과 더 아픈 날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완전히 아픔을 느끼지 않는 날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지던 날들이었다. 허리 운동을 좀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좀 덜 아프다 싶으면 운동을 안 하곤 했으니 디스크의 고통을 이겨낼 만큼 허리 근육이 단련되지는 못했던 탓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기숙사에서 그만 울음이 터져 버렸다. 나도 당황스러웠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다니! 그렇게 아팠던 것은 처음이라 결국 병원으로 향했다.
척추 전문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는데 세상에 디스크가 터졌단다. MRI를 찍어주시던 선생님이 이렇게 상태가 심각한데 어떻게 참았냐고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난다. 평소 엄살이 심한 사람인지라 어떻게 참은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당시에 느꼈던 고통은 나에게 있어 일상이었다. 참았다기보다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버텼던 것이 그 지경까지 가게 됐나 보다.
수술은 1시간 안에 끝날 것이고, 절개는 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예상보다 오래 걸려 기다리던 엄마를 애타게 했다. 아직도 하얀 수술실에 엎드려서 마취하기 직전의 그 분위기가 생생하다. 차갑고도 싸늘했던 기운.
정말 다행스럽게도 수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나는 입원한 지 하루 만에 퇴원했고, 다음 날부터 일상생활이 가능했다. 같은 병실에 계시던 할머니들께서 너무 부러워하셨다. 역시 젊으니 퇴원도 바로 한다고 하시며 건강하게 잘 지내라고 말씀해주셨다. 감사했다. 의사 선생님은 하이힐과 지나치게 살이 찌는 것만 조심하면 괜찮을 거라고 했다. 다행히 하이힐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고, 살이 찌는 것은 좀 경계해야 할 부분이었다.
디스크로 고생한 기간은 21살 때부터 23살 때까지 딱 3년간이었다. 3년을 고생하고 수술을 받았다. 수술 덕분에 완치했고 지금까지 허리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없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아팠던 기간을 생각하면 지금이 정말 감사하다.
둘째가 태어난 지 50일 정도밖에 안됐을 때, 열이 났다. 일반적으로 아기는 6개월간은 엄마에게서 받은 면역력으로 고열이 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일단 대학병원에 가라는 소견서를 받았다. 아직 100일도 안된 아기라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택시를 타고 부랴부랴 세브란스로 달렸다. 당일 예약이 안됐기 때문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입원을 하고 자세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게다가 입원실도 없어서 첫날은 응급실 안에 있는 임시 입원실을 사용했다. 별의별 검사를 다 받았다. 뇌수막염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척수 검사를 받아야 한 대서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당연히 뇌수막염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겁이 났다. 당시 레지던트였던 담당 의사가 자기들이 대학에서 배우는 기본 매뉴얼이라고 했다. 학교에서 100일이 안된 아기가 38도 이상으로 열이 오르면 3가지 검사를 자동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하지 말라고 그렇다고 하라고도 강요할 수 없는 그 선생님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그래도 최대한 내 상황을 고려해주었던 그 마음이 지금도 참 고맙다. 다행히 검사는 한 번에 끝났고,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울지도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혈액 검사한다고 피를 뽑을 때 더 울었던 것 같다. 피를 뽑을 때는 담담한 척해놓고서는 척수 검사하러 들어간 아이를 보며 얼마나 울었던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덜컹덜컹하다.
응급실은 어쩜 그리 환자가 많은 것일까. 병원 밖의 세상과 병원 안의 세상은 너무도 달랐다. 모든 검사가 끝나고 다행히 열이 떨어져서 마음이 좀 놓이게 되자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밤이 없는 곳인 것 같았다. 딱 하룻밤을 병원에서 있었는데 환한 조명은 밤새도록 꺼지지 않았고, 환자들은 끊임없이 의사와 간호사를 찾았다. 의사들이 과로사로 쓰러진다는 게 이해가 됐다. 왜 간호사들이 대학병원에서 근무하지 않으려는지 알 것 같았다. 응급실에서의 하룻밤이 참으로 길었다. 어제는 따뜻한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오늘은 온갖 환자들이 가득한 불이 꺼지지 않는 병원에서 둘째랑 나랑 남편이 함께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첫째는 할머니와 함께 잠든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이가 아프면 내가 아픈 것보다 일상의 소중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아이가 응급실에 가게 된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이튿날 일반 병실로 옮기고 거기서 하룻밤을 보낸 뒤 퇴원했다. 결론은 바이러스성 감기였다. 밤에 기침을 몇 번 할 때 진작 알아차리고 병원에 갔더라면 이 고생을 안 했을 터였다. 그 기침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나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둘째라는 이유로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지만 지금도 참 미안하다. 그나마 그 이후로는 아이가 어떤 신호를 보내면 예민하게 반응을 한다. 바로 병원에 가거나 하진 않아도 주의 깊게 관찰하게 된다. 걱정이 되면 휴대폰 검색을 할 일이 아니라 병원에 가는 것이 맞다. 아이의 신호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던 순간이었다.
‘오늘은 어제의 누군가가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하루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너무 많지만 그것을 정작 실천하고 사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나의 아픔과 아이의 아픔을 통해서 일상의 소중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만 정작 평온한 나날들이 지속되면 그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절대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매순 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를 돌아보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절대 매 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가 없다. 요즘 그 감사함을 참 많이 느끼고 있다. 하루가 정말 소중한 것임을 실감하고 있다. 물론 매일이 그렇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을 그렇게 보내고 있다.
카르페디엠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이 문구를 처음 보았을 때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갈수록 이 말은 변질되어 자기 합리화를 하는데 쓰이기 시작했다. ‘YOLO’라는 새로운 문구와 함께 내 소비하는 삶의 면죄부로 사용되었다. ‘그래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뭘 또 해, 됐어 좀 쉬어’, ‘열심히 공부했는데 이제 좀 놀아도 되지’, ‘임신했는데 지금 뭘 또 해’, ‘애를 둘이나 낳고 키우고 있는데 더 뭘 해야 해’라는 생각들로 나의 욕망을 모른 채 했다. 하루하루 의미 없는 일에 소비하는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으로 ‘카르페디엠’과 ‘YOLO’를 갖다 붙였다.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생각하지 못한 채 늘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은 나의 마음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대충 봉합했다. 무언가 늘 불안한 마음, 마음 한 구석에서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웹툰을 보면서 그런 마음을 지우려고 했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너 열심히 살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안심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조금 다르게 살기 시작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하루를 계획하여 기록하며 일기를 쓴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글을 쓰기도 하고 블로그 포스팅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눈을 뜨는 순간부터는 내 시간은 사라진다. 그때부터는 정신없이 하루가 흘러간다. 첫째를 어린이집을 보내고 한 숨을 돌린 후 하루 계획했던 일들을 시행한다. 둘째가 깨 있을 때는 가급적 놀아주려고 노력한다. 둘째가 잠이 들면 또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 글쓰기를 하는 시간이다.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또 정신없는 저녁이 시작된다. 밥 먹고 씻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모든 할 일을 끝내고 침대에 눕는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굿나잇 인사를 한다. 누워서 오늘 하루 한 일들을 생각한다. 계획한 일들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내일 할 일들을 생각하거나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건 정말 짜릿한 기분이다. 어떤 날은 너무 피곤해 그냥 쓰러지듯 잠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이렇게 꿈꾸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기분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충만감을 가져다준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언제 잠들까를 기다리다 화를 낸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냥 같이 잠들어버린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일찍 눈을 뜨게 된다. 새벽의 기운을 받으며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일은 정말 너무 소중한 나의 일상이 되었다. 하루하루 기대되는 마음으로 눈을 뜬다는 것. 살면서 언제 이런 걸 느껴봤을까 싶을 정도로 요즘 느끼는 이 기분이 생경하다.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길어졌다. 하루를 계획하니 무엇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 하지 않게 된다. 계획한 것을 하나씩 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저문다. 물론 계획대로 다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 완수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하기 위해 노력 한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성취감, 할 수 있다고 자꾸 나를 이끄는 그 에너지를 느끼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 예전 같으면 ‘다음에 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어떻게든 다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다. 해야 할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니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일상의 시간들이 너무나 감사하다.
카르페디엠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YOLO에 담긴 삶의 진리가 무엇인지 이제야 감이 잡힌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충실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내일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표지 사진 : Photo by Marcus Cramer on up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