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는 잘했다’를 외칠 수 있도록

< 2 장 > 소중한 삶을 전하려 합니다.

by 이유진

< 2 장 > 소중한 삶을 전하려 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처음 '내가 잘했다' 구호를 외치게 된 것은 바로 이 문구 때문이었다. 칭찬의 좋은 점은 잘 알고 있지만 아이들에게 칭찬보다는 지적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걸 인지하고 난 이후로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학급 게시판에 ‘칭찬은 0반 친구들을 춤추게 한다’ 공간을 마련하여 예쁘게 꾸며서 아이들에게 칭찬의 중요성을 부각했다. 그것을 보면서 아이들이 서로를 칭찬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택도 없는 일이었다. 내 기대만큼 아이들이 서로 칭찬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돌아가며 칭찬해주기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 중도에 흐지부지 되었다. 이것저것 해보다가 고안해 낸 방법이 바로 셀프 칭찬이었다.


‘나는 잘했다’ 인사법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었다. 누가 누구를 칭찬하는 것보다 나 먼저 자신에게 칭찬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었다. 따로 시간 내지 않고 마지막 종례시간 인사할 때 한 마디만 더 하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나마 가장 오래 할 수 있었다. 물론 매일 하지는 못했다. 막상 집에 갈 시간이 되면 마음이 급해지는 아이들과 나 역시 할 일이 많을 때면 허둥지둥 아이들을 보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할 때만큼은 온 복도가 울릴 정도로 엄청 큰 소리가 나는 것에는 틀림없었다. 크게 잘했다고 소리쳐야지만 보내주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시간만큼은 남들 눈치 보지 않고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 다들 웃으면서 교실 문을 나섰다.




첫째 아이는 유독 밥을 잘 안 먹는다. 일단 아빠를 닮아 식탐이 없다. 그리고 젤리나 마른 건과일 같은 쫄깃한 식감을 좋아해서 밥은 일단 제외 항목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세 숟갈 정도 먹고 나면 끝, 그때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입을 벌리고 받아는 먹는다. 문제는 입에 물고 있는 것이다. 몇 번 씹고는 맛도 없고 먹기도 싫으니 그냥 물고 빨고만 있다. 수분이 빠지니 더 맛이 있을 리가 있을까. 결국 앞니 뒤쪽으로 충치가 생겼다. 밥 먹을 때마다 나도 아이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내가 한창 예민할 무렵인 작년 여름 즈음에는 밥을 먹는 것이 전쟁을 치르는 것과 다름없었다. 소리치고, 화내고, 협박하고... 결국은 아이는 울었다. 그런 공포심을 조장해서 먹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은 걸 알면서도 그때는 참 어리석게도 그런 나 자신을 외면해 버렸다. 내 문제였는데 그것을 아이에게 화풀이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시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는 잘 먹는 때가 있고 잘 안 먹는 주기가 있는데 그때가 특히 안 먹는 때였던 것 같고 내가 그렇게 아이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잘 안 먹는다. 대신 방법을 바꾸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과일과 같이 먹이기, 입을 움직이는 인형과 함께 먹기, 음식을 씹어 소화되는 과정을 그림으로 보여주기, 조금씩 먹기, 계속 칭찬해주기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과일과 같이 먹는 것이었다. 화를 내기에 앞서 몇 숟갈 먹고 안 먹기 시작하면 좋아하는 과일과 같이 먹인다. 예전에는 과일을 같이 먹는 게 더 밥을 안 먹게 하는 것 같아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했는데, 이젠 그냥 같이 먹인다. 그게 서로 스트레스받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에 효과가 있었던 것은 스스로 밥을 잘 먹는 사람으로 칭하게 하는 것이었다.


“박시완 선생님, 밥을 꼭꼭 씹어 먹는 법을 가르쳐주세요.”

“네에. 이렇게 씹어 먹으면 돼요.”


이 방법을 처음 사용한 날은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 그야말로 평소 먹는 절반의 시간에 밥을 다 먹은 것이다. 밥을 잘 씹어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자기 입에서 그 말이 나오게 하니 정말 씹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 방법은 길게 가지는 않아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사용하고 있다. 이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이후 이민규 교수님의 <실행이 답이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김밥이나 파는 사람으로 규정하지 마라. 자신을 크고 넓게 규정하라!”


이 말은 편의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에피소드를 다루면서 인용된 것이었는데, 편의점 사장이 본인을 스스로를 ‘김밥이나 파는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편의점 체인 기업을 꿈꾸는 사업가’로 규정하는 것에는 실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말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그렇다 내가 아이에게 '박시완 선생님'이라는 칭호를 붙여 줌으로써 아이는 스스로를 밥을 잘 먹는 사람이라 규정한 것이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여 일시적으로나마 밥을 잘 씹어서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경험을 통해 이렇게 어린아이 조차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느냐에 따라서 보이는 행동이 즉각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변에서 칭찬해 주는 것만큼이나 스스로에게 칭찬해주는 일이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를 낮은 존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물론 큰 자부심과 자존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은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니 <자존감 수업>, <미움받을 수 있는 용기>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게 아닐까.


내가 특히 그런 사람이었다. 스스로 잘하는 것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것은 일단 제외시켰다. 그 잘하는 것들은 당연한 것이고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잘 못한다고 여기는 것에 집중했다. 알게 모르게 혹은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작게 규정했다. 요즘은 그런 사실을 알고 내가 왜 그랬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 어린 시절 경직된 분위기의 가정환경이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 집은 전형적인 경상도 가부장적인 집이었기 때문에 서로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너무 인색했다. 특히 입 밖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금기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버이 날이나 부모님 생신 때, 혹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종종 편지를 쓸 일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사랑한다'는 말을 꼭 썼다. 하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그건 분위기 탓이었다. 가족이니 서로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것이 기본 바탕이 된 것인데 그걸 굳이 말로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나도 동생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일정 부분 동의한다. 반드시 사랑한다는 말을 써야지만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보니 의도적으로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왜냐하면 말도 습관이고, 말은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한창 나와 많이 싸우면서 엄마에게도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어느 시기부터 엄마가 좀 달라졌다. 아빠만큼이나 표현에 인색했던 엄마가 소위 낯간지러운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상냥한 말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많이 웃어주려고 노력하셨다. 특히 그 당시에 엄마가 나한테 많이 했던 말이 ‘사랑받은 사람이 사랑도 줄 수 있다’였다. 내가 못되게 굴 때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하셨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엄마한테 참으로 감사하다.


우리 부모님이 정말로 나를 많이 사랑하셨고 지금도 그렇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게 인색한 것은 사실이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사랑한다는 말이 좀 낯간지럽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참으로 쉽게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감명 깊은 설교는 잘하는 선생님이었지만 표현은 잘 못하는 선생님이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에게 인색한 사람이 되니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현은 늘 딱딱한 사감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스스로에게 관대해지려면 자기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긴 하지만 누군가의 도움으로 만들어 질 수도 있다. 특히 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받는 칭찬과 사랑의 긍정적인 표현은 스스로를 좀 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좀 더 큰 사람으로 규정짓게 만든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자존감이 바로 그것이다.


비록 오늘 잘하진 못했을 지라도 내일은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크게 외칠 수 있는 그 자신감.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스스로가 ‘나는 잘했다’를 크게 외칠 수 있는 용기이자 믿음이고 자기에 대한 사랑인 것이다.




*표지 사진 : Photo by Corinne Kutz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