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장 > 소중한 삶을 전하려 합니다.
“여기에 있었어. 여기.”
작은 손으로 서랍을 열더니 거기서 불쑥 찾고 있던 집게를 꺼낸다. 세상에. 도대체 이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일까. 첫째 아이의 기억력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관찰력이 뛰어나다고는 생각했었지만 그저 짐작일 뿐이었는데 말을 하면서부터는 아이의 관찰력이 기억력과 연결되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고슴도치 엄마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여기면서도 아이의 가능성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아이를 지켜본 결과 일단 내가 한 번 알려준 것과 본인이 관심이 결합하면 놀라울 정도로 아웃풋이 빠르고 강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 까투리’ 뮤지컬을 아이와 함께 본 적이 있다. 아이는 메인 캐릭터가 아닌 '장수풍뎅이'에 빠져 공연이 끝나고서 장수풍뎅이 아저씨를 찾아댔다. 마침 배우들이 관객석을 순회할 때, 장수풍뎅이와 하이파이브를 하게 됐는데 그 기억 때문인지 그 이후로 책도 찾아보며 장수풍뎅이에 큰 관심을 보였다.
“건데기야 건데기.”
건데기라니. 처음엔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번데기’였다. 아이가 보는 자연 관찰 책에 장수풍뎅이가 자라기까지의 과정이 사진과 함께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아직 스스로 읽을 수는 없기에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이 되는 과정을 읽어주면서 설명해 주었다. 처음 읽어주었을 당시에는 사진을 보느라 바빠 듣지도 않고 책장을 넘겨대더니 몇 달의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책에 있는 사진을 펼쳐 들고서 이건 뭐냐고 자꾸 물어댄다. 번데기 사진을 가리키길래 곤충들은 번데기의 시기를 지나야지 애벌레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내가 설명하면서도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건데기’를 반복하는 걸 보면 꽤나 인상 깊게 남았구나 짐작하게 된다. 한 번은 어린이 집을 다녀와서 옷을 갈아입는데 느닷없이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건데기가 되는 거야!’라고 소리쳐서 깜짝 놀란 적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면서도 많이 자랐구나 싶어 대견스럽기도 하다.
아이의 어휘 구사력이 하루가 달리 성장하고 있다. 때로는 그런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이를 친구라 여기는지 아이랑 대거리를 하게 된다. 그렇게 아이와 말도 안 되는 입씨름을 하다가 보면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은 생각에 혼자 피식 웃음이 난다. 하지만 그만 하라고 혹은 안된다고 해도 절대 멈추지 않고, 본인이 직접 확인하고 난 다음에야 행동을 그만하는 모습이 반복되면서 지치는 순간도 많아졌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지만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어쩜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는지. 결국엔 내가 뭐라든 자기의 의지대로 하고 마는 모습을 보며 순간 나의 의지에 대해 떠올려 보게 됐다. 나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적이 언제였을까? 혹은 나는 저런 의지를 갖고 있기는 한 걸까?
어릴 적에 우주에 관심이 많았던 지라 SF영화를 많이 보았다. 특히 ‘맨 인 블랙’의 마지막 장면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정도로 꽤나 인상 깊게 남아있다. (잠깐 설명하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장소에서 카메라는 ‘줌 아웃’ 한다. 지구로 태양계로 그리고 우주로 그렇게 줌 아웃된 우주 하나는 작은 구슬이 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가 나타나 그 구슬들로 구슬치기를 한다. 그의 다른 손에는 주머니가 들려있고, 구슬들을 집어넣는데 주머니 속은 이미 다른 구슬들로 꽉 차 있다.)
나는 그 장면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지구과학 시간에 배웠기 때문에, 우리 우주 말고 다른 우주가 있다는 것 정도는 이론상 알고 있었지만 스크린으로 시각화된 것을 보니 실로 다른 느낌이었던 것이다. 우주의 무한함에 실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하고 있는 무수한 고민들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느낌은 잠시뿐이라는 게 문제다.)
그런데 나는 그 우주를 아이들 속에서 본다. ‘인터스텔라’, ‘아바타’ 같은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과 그것을 구현해 내는 그들의 능력이다. 그런 스토리를 상상하는 것도 대단한데 상상한 것을 구현해내니 이 얼마나 멋진가! 우리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해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저 감탄만 하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본인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학교에서 한 번 씩 영화를 보여줄 때가 있는데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에이 선생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하고 아이들은 그저 웃지만 분명히 그 가운데 그런 다짐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믿고 싶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5, 6학년을 담임했던 때에는 생활기록부에 꼭 장래희망을 적어야 했다. 아이들이 제출한 장래희망을 기록하고 있노라면 직업이라는 게 별로 많이 바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선생님이 꽤나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간간히 파티시에와 같은 당시 인기 있는 직업들을 보면서 트렌드를 파악한다. 그런 가운데 늘 있어왔던 의사, 검사 같은 직업들 그리고 근래에 들어 급부상한 공무원. 아이들은 공무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는 있는 것일까?
“선생님,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공무원이 최고래요!”
그렇게 말했던 아이의 아버지는 의사였다. 당시 급식을 먹으면서 아이를 통해 듣은 바로는 아버지께서 의사를 잠깐 관두시고 시골에 내려가셔서 농사를 지으신다는 것이었다. 아이는 아빠가 의사일 때 돈을 훨씬 더 많이 버셨다고 하면서 아쉬운 내색을 비췄던 것 같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 아이 아버지는 아마 인생의 새로운 가치를 찾고자 여행을 떠나신 게 아니셨을까 짐작하게 된다. 지금 어떻게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본인이 원하는 바를 찾지 않으셨을까?
문득 내가 초등학교 때 무엇이 되고 싶었는지 궁금해졌다. 나의 장래희망은 무엇이었을까? 고등학교 때는 기억이 나는데, 초 중학교 때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다른 아이들처럼 교사나 의사 같은 직업을 적지 않았을까 싶다. 그만큼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간절한 목표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막연히 20살이 되면 혹은 어른이 되면 TV 드라마에서 보던 예쁜 여배우 같은 삶을 살 것이라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꿈꾸던 삶이 저절로 펼쳐지리라 여겼던 것 같다. 꿈꾸던 삶이라는 것도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 채 그런 시절을 보냈다.
만약 그때 내가 책을 좀 더 열심히 읽었더라면, 혹은 누군가 직업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내가 될 수 있는 무엇인가에 대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앞서 이야기했듯 재수는 그 전 성적에 비하면 성공적이었다. 원서를 접수할 때 열심히 전략을 짰다. 일단 어디든 합격을 해야 했기에 한 군데는 무조건 붙을 수 있는 곳에 지원했다. 나머지 한 군에서 갈 곳을 정해야 했다. (‘다’군은 사실상 의미 없는 지원이었다.)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의 신문방송학과에 지원할 수 있는 점수를 받았기 때문에 고민이 되었다. 방송과 관련된 일도 선생님도 내가 바라던 일이었기 때문에 같은 군에 있었던 두 학교 중 선택을 해야 했다. 학교를 찾아가서 선생님들과 상담도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쉽사리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한창 고민을 하고 있던 그때, 아빠가 한 말씀하셨다.
“기자가 되고 싶다고? 근데, 아빠가 봤을 땐 넌 그 정도 깜냥이 안된다. 기자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직업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니 소신 껏 기사를 쓸 수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간다면 지원해 주겠다. 잘 생각해봐라.”
결국 교원대를 선택했다. 아빠의 말을 따랐냐고 한다면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소 나에게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지 않으셨던 분이기 때문에 아빠의 말을 그저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그때의 아빠를 원망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아빠는 나를 정확히 보셨다고 판단된다. 결국 나의 선택이었다. 사실 아빠의 말에 겁이 났다. 내가 바라는 일에 대한 의지가 부족했으리라. 하고자 했으면 어떻게든 밀고 나아가는 게 맞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현실적으로 선생님이 되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타협해 버렸다. 합리화시켜버린 것이다.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 채 지레 겁먹어 버렸다. 그 이후로도 나의 의지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그 길로 나갔을 것이지만 그러지 않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그것 역시 내 선택인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가능성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하지만 훈련이 필요하다.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본인이 확고하게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살아가는 어른들이 정말 많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그러면 안 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경험을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바라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정석을 미리 공부하는 것이 경험이 아닌 것이다.
공부는 반드시 필요하다.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처럼 1등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힘을 기르기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경험하고 공부하는 가운데 그들이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은 그 빛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과 지식이 쌓여 용기를 만들어내고 용기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자존감이 되어 우리 아이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줘야 한다. 그게 우리가 해야 할 부모의 역할이고 어른의 역할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표지 사진 : Photo by Guillermo Ferl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