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에서 중요한 것
택배가 경비실에 맡겨져 있다는 문자를 받고 괜한 투덜거림과 함께 경비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무거운 짐으로 인해 썩 기분이 좋지 않았던 나와는 달리 경비 아저씨께서는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셨다. 택배를 받고 수령 확인 사인을 하는 사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시는데, 내 이름을 보시고는 대뜸 기분 좋은 농담을 걸어오셨다.
"내가 이유진이라는 이름치고 안 예쁜 사람을 못 봤어."
그 한 마디가 뭐라고 나는 어느새 기분이 좋아졌다. 방금 산 복숭아를 하나 드시라면서 건넸는데 왠지 그 말을 듣고 전한 것만 같아 조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경비실 가는 길에 하나 드려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뭔가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날 하루는 아저씨의 환한 웃음과 함께 그 한 문장이 종종 떠오르면서 나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아저씨가 실로 진심을 다해서 말을 하셨든 아니든 아저씨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능력을 갖고 계신 분임에는 틀림없었다. 삶이 그렇게 만들어주었을 수도 있고 본인이 살면서 깨달은 큰 지혜일지도 모른다. 뭐가 됐든 말 한마디가 가져오는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던 날이었다.
어느 날은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내 앞에서 물건을 계산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는 계산하시는 직원분께 뭐라고 하시며 불만 섞인 말을 자꾸 하셨다. 처음에는 그냥 듣고 계시던 직원분도 아주머니의 날 선 말이 계속되자 참지 못하고 받아쳤는데, 웬걸 아주머니는 오히려 반말을 하면서 더욱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아무리 직원이 당신보다 어리다고 하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 직원이었더라면 얼마나 화가 나고 속상했을까를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씁쓸해졌다. 자기 기분에만 치우쳐 함부로 말을 하는 도대체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 건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상대방을 늘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는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로 인해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 역시 올바른 행위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서비스의 대가로 돈을 지불하는 세상이지만 그 대상자는 엄연히 나와 같이 존중받아야 할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때 스포츠 매장에서 아주 잠깐 알바를 한 적이 있었다. 무엇인가를 판매하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많이 판매되는 품목 중심으로 제품들의 가격을 외워야 했고, 그에 대한 기본적인 판매 지식이 필요했다. 더불어 손님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상냥한 말투를 썼어야 했는데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좋은 서비스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정작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좋은 태도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게 됐다.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인지, 얼마나 큰 감정 노동을 겪는 사람들인지를 잠깐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반겨줌의 중요성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 이상 가정에서부터 사회화 공부를 하게 된다. 특히 가정은 사회화의 가장 작은 단위가 되는데, 그 어느 장소보다 가장 사회화가 필요한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서로의 영역을 침해한다. 특히, 부부 관계에서 그 경계가 가장 애매한 것 같다. 늘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지만 실천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타인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너그럽다가도 배우자에게는 무뚝뚝하고 때 날 선 예민함을 곤두세우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내가 상당히 이 경우에 가까웠다.
이제 두 돌 된 둘째가 태어났을 무렵, 아이가 둘이 되면서 육아는 두배가 아니라 곱절로 힘들어졌다. 그것은 나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마찬가지였고, 서로가 지쳐가던 가운데 싸움의 빈도 역시 잦아졌다.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의 반복이 지겨웠고,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전과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반갑게 맞아주기로 다짐했다. 예전에 친구와 나누었던 이야기 중에 '반겨줌의 중요성'에 대해 친구가 언급했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네는 3형제로 식구가 많은 편이다. 언젠가 한 번 친구네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공교롭게도 집안 식구 중 한 명도 아빠를 알은체 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식구들 모두가 자의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어쩌다 보니 그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 버린 것이었는데 그날 아버지께서는 대로하시며 어머니를 비롯 삼 형제가 크게 혼쭐이 났다고 했다. 친구네는 그 날 이후로 집에서 아버지를 맞이하는 순간에는 형제 세 명이 (일단은 뭐가 됐던) 약간의 오버를 해서 아버지를 반갑게 맞이하는 일이 불문율처럼 되었고, 그것은 친구가 독립을 하기 전까지도 계속 이어져왔다고 했다. 그랬기 때문에 본인은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아주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비록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날에도 일단은 웃으면서 맞이한다고 했다. 친구의 그런 말을 듣는데, 나는 어떤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아이 둘과 씨름하다가 늘 지치고 피폐(?)한 모습으로 남편을 맞이 했던 것 같다. 때로는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왔느냐에 대한 원망의 눈초리로, 때로는 쳐다보는 둥 마는 둥, 때로는 '왔냐'며 간단한 눈인사만 했던 것이 것이 기억의 대부분이었다. 생각해 보니 아이를 낳은 후로는 웃으며 반갑게 맞아준 적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물론 아이를 낳기 전에도 엄청 환영하며 반갑게 인사하는 스타일은 아니긴 했다.) 그런 기억을 마주한 순간, 남편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누구는 일 안 해봤니?
일하다 아이를 가지면서 육아를 전담하게 된 엄마들의 대부분이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는 일하러 가는 게 낫다고 말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그만큼 육아가 힘들다는 것을 대변하는 것인데, 나 역시 그에 동의하는 편이다. 남편과 싸울 때마다 레퍼토리로 하던 말이 누구는 일 안 해 봤냐고, 나도 직장 다녔는데 왜 나만 이렇게 집에서 애만 봐야 하냐고, 억울하듯 내뱉곤 했다. 출근하는 직장인의 고됨을 나도 겪어 봤다는 것은 싸움에서 굉장한 무기가 되었다. 하지만 집에만 있다 보니 직장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조금 멀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라, 내 상황만을 생각하면서 출퇴근하는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잊어버리게 됐던 것 같다. 그걸 느끼게 된 일화가 있다.
얼마 전, 지인의 상갓집을 방문하게 된 날이 있었다. 어머니께 급히 부탁을 드리고 저녁에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데, 퇴근시간이라 그런지 정말로 사람들이 많았다. 실로 오랜만에 퇴근길 '지옥철'을 경험했다. 그야말로 꼼짝달싹할 수 없을 만큼 앞뒤로 밀어붙이는 사람들 속에서 간신히 기둥을 붙잡고 서 있는데, 자연스레 매일 이 과정을 겪고 있을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퇴근길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겨우 지하철을 빠져나와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칼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이 추운 날에 정장을 입고 딱딱한 구두를 신은 채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기는 각양각색의 직장인들을 보며 '고단한 하루를 보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멋져 보이기도 했고 부럽기도 한 복합적인 마음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다. (친구네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그중 하나였다.) 여러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한 가지였다. 누가 더 많이 하고 더 적게 하고 혹은 더 힘들고 덜 힘들고의 경중을 따지기에 앞서 일단은 '웃으며 맞이해보자'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쉬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전형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자라 특히나 아빠를 닮아서 무뚝뚝함으로 도배를 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적어도 출퇴근 길에 내가 잠들어 있지 않은 이상은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하자고 마음먹었다.
부부 사이의 상냥함
물론 그 날의 결심 후로 대단히 바뀐 것은 없다. 싸움이 사라진 것도 아니고, 갑자기 없던 애교가 생겨난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아침 출근길에 웃으며 기분 좋게 인사하는 남편과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나, 그리고 아빠의 뽀뽀 인사를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이 있다. 그리고 퇴근길에는 (전에는 저녁을 준비한다는 핑계로 나가보지도 않았지만) 문 앞에서 '잘 다녀왔냐'라고 웃으며 가벼운 포옹으로 맞이하게 됐다. 아이들도 함께 말이다. 아직은 개선 중인 단계라 매일 지켜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작지만 중요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은 나도 남편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잘 다녀왔어?" "오늘 힘들지 않았어?"
짧게 건네는 말 한마디에 남편의 이런저런 이야기가 시작된다. 회사에서 있었던 사소한 에피소드나 퇴근길에 있었던 일 등, 남편 역시 옷을 갈아입으면서 나에게 고생했다는 안부를 전하고 저녁상 차리는 나를 도와 수저를 놓는다. 뭔가 편안함을 느끼는 듯한 남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던 것 같다.
부부관계는 참 힘들다. 학창 시절, 직장 시절 등 모든 사회적 관계 속에서 원만히 지냈던 나인지라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이 관계가 나는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모님을 비롯 시부모님 혹은 길에서 한 번씩 마주치게 되는 백발의 노부부를 볼 때면 경외심이 든다. 그 긴 세월을 어찌 이겨내고 지금 저렇게 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인지. 나 역시 그들처럼 백년해로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게 다른 건 몰라도 부모의 다정한 모습을 기억 속에 남겨주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위한 작은 관심, 그리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말 한마디가 필요하다는 것을 요즘 절실하게 느낀다. 결국 모든 것은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내 삶이 평화롭게 안정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직 아이들은 어리기에) 일단은 남편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 맞물린 톱니바퀴가 잘 돌아가기 위해 윤활유가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 남편에게 (닭살 돋는 애교는 못할지라도) 따뜻하고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아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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