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에 깨서는 십 분간 고민을 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새벽 기상 한 지도 벌써 10개월이 넘어서고 있으니 이제 곧 1년이 채워져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침에 일어날 때면 고민 아닌 고민을 하게 되는데 악마의 유혹이란 참으로 달콤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는 가운데 일어나서 꾸역꾸역 컴퓨터 앞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책 리뷰를 쓰면서 다시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정리하면서 책을 다시 읽으니 일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왜인지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때마침 들려오는 둘째의 울음소리에 얼른 방으로 향해서는 잠이 들고 말았다. 그렇게 잠을 보충하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괜찮아질 것으로 예상했던 두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게다가 구토까지 밀려오는 바람에 아이들 아침을 먹이고는 그대로 다시 침대에 누워버렸다. 꼬박 잠이 들어버렸는지 깨고 나니 30분 정도 시간이 지난 듯싶었다. 다행히 아이들이 잘 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의 증상은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체기가 있는 것인지 이 두통이 쉽사리 가시지 않겠다 싶은 생각에 약이라도 사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찬바람이 불기는 했지만 아직은 햇살 아래는 따뜻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다 보니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킥보드를 타고 나는 뒤따라가면서 걷다 보니 한 시간 이상을 걷게 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소화제를 사 먹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외출하고 돌아오셔서 결국 손을 땄다. 시커먼 피가 나는 걸 보니 왠지 아픔이 그와 함께 가시는 듯 조금 개운한 기분이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잘 체하던 것은 어른이 되면서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한 번씩 체기가 들어서면 심한 고생을 하곤 한다. 늘 엄마가 따주던 것은 서울살이를 시작하면서 나 스스로 손을 따기 시작했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나도 이제 어른이 됐구나를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그래도 친정에 있으니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내가 있다. 한 번씩 남편은 내가 혼자서 손을 따는 것을 볼 때면 독하다면서 무섭지도 않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그 모습은 내가 엄마를 보면서 했던 그것과 꼭 같았다. 엄마의 일상이 내게로 찾아왔다.
오후에는 아이들과 예방접종을 하고 함께 접종을 한 조카와 올케와 함께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키즈 카페가 함께 마련된 돼지갈빗집에서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밥도 잘 먹었다. 나는 손을 딴 것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괜찮아지기는 했지만 고기를 먹으려니 괜히 겁이 났다.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올케는 한 번 먹어보라 권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새삼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잘 소화를 시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실감했다. 맛난 음식을 앞에 두고서 먹을지 말지를 갈등하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었다. 다이어트를 위한 절제가 아니라 아픔으로 인해 절제를 하는 것은 또 다른 고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다이어트를 위한 절제는 참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파서 못 먹는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할지 새삼 이해가 됐다. <보통의 존재>에서 이석원 작가님은 당시 마흔이라고 했는데, 건강상의 이유로 고기나 고춧가루가 들어간 음식들을 더 이상 먹을 수 없음을 고백하며 괴로워했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렇구나 하면서 지나갔는데 내가 그 상황이 되고 보니 마흔이라는 나이가 음식을 제한하여 섭취하기에는 상당히 이른 시기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 괴로움이 갑자기 크게 와 닿았다. 게다가 나는 미련스럽게도 눈 앞의 음식에 절제하지 못하고 많이는 아니지만 적당량의 음식을 섭취하고야 말았다. 게다가 후식으로 커피까지 마셨는데, 아직까지는 다시 두통이 찾아오지는 않아서 다행이지만 아까 참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는 밀려온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맛있게 먹고 나서 한 바탕 소리를 지르고 놀고는 조카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시끌벅적함은 이내 소강되고 첫째 아이를 씻기는데 새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벅찬 감동이 갑자기 물밀듯이 밀려왔다. 며칠 전 아무 생각 없이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인터넷 가십거리들을 검색하다가 암투병을 했던 '허지웅'씨의 기사를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티브이 출연과 그 프로그램에서 했던 말들에 대한 기사였는데, 그가 병을 치료하는 동안 느꼈던 것은 바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상의 소중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했다. 인간은 왜 항상 본인에게 주어진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함을 느끼기 너무 어려운 존재일까? 나 역시 나에게 주어진 것들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챗바퀴처럼 흘러가는 삶에 대한 지루함을 느끼고 때로는 짜증을 내면서 하루를 보내곤 한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삶과 내 처지를 비교하면서 때로는 우울해지기도 하고, 좀 더 특별하지 못한 내 삶을 비난하기도 하는데, 그런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고민인지를 오늘 느꼈다.
늘 행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머리로는 인지하면서도 막상 내 삶에서 인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아이를 씻기면서 느낀 찰나의 깨달음이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요 근래 친정에서 지내면서 이리저리 놀러도 많이 다니고 집안일에서도 잠시나마 벗어나 휴식을 취한다고 느꼈음에도 아이들에게 잦은 짜증을 내곤 했다. 스스로도 그런 모습이 의아했는데, 내가 왜 그랬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됐다.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늘 애쓰며 살아온 가운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나도 모를 압박감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 열 달간을 를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가운데, 그 삶이 가져다주는 행복이 물론 있었지만 동시에 스트레스 또한 함께 있었음을 인정한다. 무엇인가를 이룬 것 같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니라고는 하지만 나는 조급함을 느꼈고, 그만큼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느끼며 힘든 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게다가 친정에 오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흐트러지는 모습에서도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나 보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 가운데, 무의식 속에 나를 비난하는 존재를 만들어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 존재를 오늘에서야 발견했기 때문인가.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나는 조금 홀가분해진 느낌을 받는다.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써야겠다 다짐했던 것이 조금씩 미뤄지는 것이 용납이 되지 않았고 그런 가운데도 매일 해야 한다고 정한 일들을 하나씩 빼먹을 때마다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넘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고 지금의 이 시간이 또 재도약하기 위한 쉼의 시간이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왜냐하면 나는 곧 다시 돌아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일상의 반복이 지루하지만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어떤 불행한 사건이 닥쳐서 깨닫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가운데 이렇게 문득 내 삶의 소중함을 느끼기에 매일이 지루하더라도, 혹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일상이 가져오는 짜증에 죄책감을 일더라도. 그런 가운데 한 번씩 느끼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또한 힘겹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 얻는 깨달음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싶다. 일상의 소중함을 매 순간 느낄 수 있도록 힘겹지만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표지 사진 : Photo by Hans Vivek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