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오리지널’에 대한 갈망

< 4장 > 자기 연민은 이제 그만

by 이유진

“이건 어떻노? 괜찮나?”

“어.”

“좀 봐봐라, 대충 보지 말고.”

“보고 있다! 지금 도대체 몇 번째고?”


결국 동생은 화를 냈고, 나도 기분이 상해서 그만 화를 내게 됐다. 매번 그런 식이었다. 딱히 외모에 신경 쓰고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한 번씩 외출할 때 동생이 집에 있으면 어떤 옷을 입고 나갈지 물어보곤 했는데, 몇 번 물어보다 보면 결국 서로 화를 내는 지경에 다다르게 됐다. 동생도 처음에는 관심 있게 봐주다가 내가 자꾸 이랬다 저랬다를 반복하니 결국에는 화를 내는 것이었다.


‘Original’이라는 단어. 아디다스 때문에도 유명한 말이지만 나는 옛날부터 오리지널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짝꿍이 되어 단짝이 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우리 동네에서 소문난 미인이었다. 워낙 미모로 유명했기 때문에 사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있었고, 예쁜 아이에 대한 시기로 인해 평판은 그리 좋지 않았던 친구였다. 그래서 짝꿍이 되었을 땐 괜한 선입견에 말도 걸지 않은 채 학습지만 풀어댄 기억이 난다. 친구는 아직도 그때 일을 회상하면서 서운했단다. 늘 처음이 어색했던 나는 그냥 뻘쭘해서 그랬던 것 같다. 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짝꿍을 바꾸지 않은 채 거의 1여 년을 보냈고, 우리는 단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외모와 달리 굉장히 소탈한 면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잘 챙기고, (소문과 달리) 털털하면서 굉장히 성격이 좋은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가 당연히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때 최고 못생김의 시기를 지나서 고등학생 때는 그저 보통의 여고생으로 돌아온 상태였는데, 미인과 가까이 있다 보니 나는 늘 예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나에게 그 친구가 말했다.


“유진아, 니는 못생긴 게 아니라 그냥 보통이다. 그저 평범한 거라고, 그러니까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마. A, B, C라고 굳이 나눈다면 B 다 B”


친구의 말은 정확한 것이었다. 나는 정말 보통이었다. 뛰어나게 예쁘지도 그렇다고 보기 싫을 정도로 못생기지도 않은 그저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 귀에 그게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는 나 혼자 C라고 점수를 주었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그때의 나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묻고 싶다.)


우리 학교 옆에 남자 고등학교가 있었다. 우리 학교와 그 남자학교는 동아리 활동에 연합 동아리가 많았고, 방송부 역시 교류가 있었다. 당시 2학년 선배를 짝사랑했는데, 그 선배는 나와 동기인 다른 친구와 사귀었다. 물론 나는 고백조차 한 적 없다. 그럴 마음조차 꿈꿀 수 없었던 것은 예뻐야지 된다고 생각한 나의 잘못된 생각과 그리고 스스로 나는 예쁘지 않다고 결론 내린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나는 누가 봐도 미녀였던 내 친구 정도의 외모가 되어야만 예쁜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예쁘지 않았기 때문에 꾸밀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오리지널에 대한 개념은 그런 것이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을 하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매번 그런 식이었다. 우리 엄마는 늘 내가 꾸미지 않고 다니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셨다. 한창 꾸미고 예쁘게 하고 다닐 20대에 알 수 없는 고집을 피우며 화장도 제대로 하지 않는 딸이 얼마나 안타까우셨을까. (그 안타까움을 먼 훗날 알게 되었다.) 당연히 옷 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옷은 엄마가 사주는 대로 입었고, 친구들과 쇼핑을 가도 친구들이 사는 것을 대부분 구경만 했지 내가 직접 사는 일은 잘 없었다.


하루는 엄마가 큰 맘먹고 백화점에 데려갔다. 한 때 '송혜교 바지'로 유명한 청바지가 있었는데 엄마가 그 바지를 한 번 입어 보라고 추천했다. 입어보긴 했지만 거울에 비친 내 허벅지가 너무 굵어 보였다. 당연히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괜찮다고 백 번을 이야기했지만 결국 펑퍼짐한 다른 바지를 골랐다. 그게 더 뚱뚱해 보인다는 것은 모른 채 내 고집대로 희한한 바지를 고른 것이었다. 결국 비싼 돈 주고 샀지만 몇 번 입지도 못하고 방치되었다.


나는 늘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모든 일에서 한 걸음 뒤꽁무니를 뺐다. 공부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원리를 다 알아야 만이 진짜 공부라는 생각으로 진짜를 찾으려고 공부를 했다. 당연히 그런 공부는 힘이 들기 마련이고, 하다 보면 지치게 된다. 시험에는 스킬이 필요했는데, 그 스킬을 익히기보다는 진짜를 찾으려고 끝을 알 수 없는 깊이에 빠져들려고 했다. 중도 포기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책도 어려운 책만 골라 읽었다. 베스트셀러처럼 읽히기 쉬운 책은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경시했다. 어쩌면 나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 혹은 자만심에 빠져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어쩌면 그때 그렇게 진짜를 추구하다가 한 우물을 깊게 팠더라면 지금 내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까?



나는 왜 그토록 오리지널에 집착했던 것일까? 왜 내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시험에 몇 번 떨어지면서 그에 대한 집착은 더 강렬해졌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을 갖고 살았던 것 같다. '오리지널'을 찾으면서 말이다.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으니 늘 누군가가 부러웠다. 그중에 한동안은 ‘서울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드디어 내가 서울에 왔구나.’


2호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마다 나는 서울에 왔음을 실감했다. 대학생 때 친한 동기들이 다 ‘서울 사람’들이라 방학 때면 서울에 종종 놀러 왔었다. 서울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즐겁게 놀았다. 그러다 집에 돌아가야 할 때가 되면 항상 2호선을 타고 강변역으로 갔다. KTX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저렴한 고속버스를 탔던 날이 많았다. 한낮에 친구들과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저녁이 돼서 2호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면 늘 ‘이방인’이라는 느낌에 문득 우울해졌다. 서울이 낯설었다. 나는 초라했다.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아니라 이방인이 맞았다. 학창 시절 늘 막연히 꿈꾸던 서울을 이제 쉽게 오고 가게 되니 서울에 대한 동경이 더욱 커지게 됐다. 서울에 있지만 서울이 더 먼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진짜 ‘서울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바보야, 서울 사람 중에서 진짜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 같아? 진짜 서울 사람 그런 게 어디 있어.”


언젠가 ‘진짜 서울 사람’인 내 친구에게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현명한 내 친구는 나에게 일침을 날렸다. 하지만 내 오리지널에 대한 집착은 그 말에 만족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진짜 서울 사람이 되어 당당하게 2호선을 타야만 했다. (당시 내게 있어 진짜 서울 사람의 기준은 서울에 직장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합격의 기쁨과 함께 대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발령을 받아 서울에 올라왔다. 몇 년의 방황 끝에 드디어 어딘가에 소속이 된 것이다. 어렵게 얻은 것이라 더욱 소중했다. 내가 바라던 진짜 서울 시민이 되었다! 당당한 서울 시민. 서울시교육청에 소속되었다는 것으로 내가 여기에 있을만한 당당한 이유가 생긴 것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를 서울에서 쫓아낼 수 없는 정당성이 생긴 것이었다. 이것이 또 내가 생각하는 오리지널이었다. 지금 이렇게 적고 있으니 왜 이렇게 웃기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에는 내게 정말 중요했다.


지금도 2호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면 ‘어스름한 저녁, 조명에 반짝이는 한강을 보며 진짜 서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기분은 정말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남편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아기 때부터 서울서 자란 서울 남자는 역시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늘 진짜를 찾아 헤맸다. 멀고 먼 길을 돌아왔다. 돌아보면 즐거웠다 추억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당시에는 참 힘든 순간들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오리지널’에 대한 내 갈망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시절처럼 '헛된' 진짜를 찾으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모든 순간이 결국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 내가 없어서 그렇게 진짜를 갈망했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내 인생 위에 있었는데 그걸 몰랐던 나 자신이 참 어리석다 생각된다. 하지만 그 어리석었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나를 찾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된 시간을 맞이한 게 아닐까 싶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진짜'를 찾는 여행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많이 방황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자기를 찾는 방황의 시간들이 있기를 바란다. 그 시간들이 결국에는 자신의 인생 위에 온전히 설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 힘들어도 방황의 시간을 조금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님이 있어서, 나를 사랑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나의 소중한 가족이 있어서 내가 오랜 방황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듯이, 우리 아이들이 그리고 나의 아이들이 방황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내가 작은 등불이 되어주고 싶다.




*표지 사진 : Photo by Jia Ye on Unsplash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