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절실했던 자존감

< 4장 > 자기 연민은 이제 그만

by 이유진

가로등이라고는 한 두 개 보일까 말까 한 시골길, 캐리어 가방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개구리 소리와 함께 장단을 맞춘다. 우리 학교는 여름밤이면 기숙사 근처 논에서 개구리 소리가 들리던 곳이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편의점도, 그 흔한 카페도 쉽게 볼 수 없는 곳이었다. 공부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만큼 놀 거리가 없었다. 하지만 최적의 환경과는 관계없이 공부는 하지 않았다. 유일한 낙은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이었고, 공강 시간이나 과제가 없을 때에는 미드를 보거나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주말이 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갔고, 월요일 이른 아침 혹은 일요일 저녁이면 기숙사로 돌아왔다.


당시 나의 주 관심은 늘 금요일 오후 시간표를 비우고 월요일 오전 시간표를 비우는 것이었다. 주말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최대한 빨리 당기고 학교로 돌아오는 시간을 최대한 늦추는 것. 그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금요일이 되면 그저 신이 났고, 일요일이 되면 저녁부터 우울해졌다. 학교로 돌아가는 버스 혹은 기차 안에서 그렇게 우울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혹여 날씨가 궂어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하늘에서는 빗물이 내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집에 꿀단지를 발라놓은 것도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완전히 서울에 정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아기를 낳고 친정에 한 번 내려가면 2-3주 정도 머물다가 올라왔는데,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는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남편은 눈물을 닦아주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핀잔을 주었다.


“또 가면 되지. 왜 울어. 아버님 어머님 평생 못 보는 것도 아니고, 그만 우시게나. 거참”

“오빠는 아버님 어머님이 늘 가까이에 계시잖아. 내 마음 모를 거야.”

“모르긴 뭘 몰라. 나도 떨어져 살아봤는데, 알잖아.”


하긴 그건 또 맞는 말이었다. 남편 역시 중국에서 몇 년 살다 왔는데, 그때는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했다고 한다. 남편은 자신의 경험 때문인지 울적해하는 나를 더욱 이해할 수 없어했다.


한 때 철학 빠져있을 무렴,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매번 그 생각을 한 것은 아니지만 종종 그에 대한 의문이 찾아왔고, 한 동안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지난날의 기숙사 생활을 떠올리면 늘 비슷비슷한 장면이지만 아직도 사진처럼 선명하게 박힌 장면이 있다.


그날은 어째서인지 기숙사 방에 혼자 남았던 날이다. 2명이서 한 방을 쓰던 당시였으니 홀로 남겨질 일은 비일 비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달리 고요했던 그날의 밤이 기억이 난다. 특히 겁 많은 쫄보인 내가 무슨 배짱이었는지 불 꺼진 방에 혼자서 스탠드만을 켠 채로 책을 읽고 있었던 것 같다. 애석하게도 어떤 책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순간 머리가 번쩍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지금도 선명하다.


‘아, 어쩌면 인간은 철저히 혼자이구나. 지금 느끼는 이 외로움은 평생 사라지지 않을 수 있겠구나.’


이미 학교생활에 충분히 적응했고, 친구들과는 더없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 연애를 했던 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연애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 내가 느끼는 이 고독은 결코 공유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큰 깨달음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 삶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이전보다는 외로움이라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자존감’이라는 것을 교육학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당연히 당시에는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지만 돌이켜 보면 내가 했던 수많은 고민과 실수들이 그로 인해 발생된 것이 아닐까 싶다. 자존감과 연관된 가장 큰 일은 아무래도 연애였다.


취직이 해결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나의 관심사는 연애로 흘러갔다. 결혼이 급한 나이는 아니었지만 뭔가 조급한 마음에 누군가 주선해주는 소개팅은 거절하지 않고 만났다. 하지만 나의 연애사업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연애를 못하는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로 내가 관심 있던 남자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에게는 내가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소개팅을 열심히 하던 중에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사람이랑은 잘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잘 꾸미지도 못하고 그다지 패션에 관심이 없는 나와는 달리 당시 남편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트렌디 한 외모와 스타일 갖추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나 같은 스타일은 별로 안 좋아하는 남자겠다’라고 스스로 못을 박았다. 그래서 오히려 맘 편하게 밥을 먹고 헤어지려는데, 맥주를 한 잔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 정도야 뭐 주선자에 대한 면이 있으니 그러려니 했고, 헤어질 때에도 다음에 또 만나자고 하길래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라고 여기며 헤어졌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에 연락이 왔다. 다음 주에 영화를 보자고. 그렇게 남편과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내 생에 있어 제대로 된 첫 연애였을지 모른다. 연애를 몇 번 해보지도 못했지만 누가 됐든 세 달 이상 관계가 지속된 적이 없었는데, 남편이랑은 1년 가까이 연애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혼까지 하게 되고 첫째도 낳고 둘째도 낳고 살고 있지만 가끔씩 남편의 마음을 의심한 적도 있다. 진짜 나를 사랑하는 건가? 왜 나랑 결혼을 했을까? 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런 의문들은 농담처럼 흘러가기도 했지만 한 번씩 싸움으로 이어질 때도 있었다. 남편은 항상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늘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던 나 자신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으로 새벽 기상을 하고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아진 것은 남편과의 관계이다. 나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한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스스로의 못난 점들을 인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내 생각을 바꾸고 그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니 남편과의 관계가 저절로 좋아졌다. 늘 내가 옳다고만 생각하고 남편이 잘못하는 것이라고 여기며 스스로를 비극의 주인공을 만들었었는데, 더 이상 그러지 않게 됐다. 그것이 정말 바보 같은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그렇게 방치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당연히 상대방 마음에 대한 알 수 없던 의심도 저절로 해결되었다. 내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로 인해 스스로에게 만족감을 느끼게 되니 나는 예전보다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한 때 나의 낮은 자존감의 원인이 부모님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화기애애한 가족의 모습이 아니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부모님은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류였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사랑을 너무 늦게 인지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중 한 명이 내 결혼식 일화를 들려줬다. 서울에서의 결혼식이 끝나고 대구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는 아빠의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즐거운 날이었던 만큼 다들 노래를 부르며 신나게 놀고 있는데, 아빠가 홀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녀는 창문으로 비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도 같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그 날 식장에 입장하기 위해 아빠 손을 잡고 대기하고 있을 때, 아빠에게 절대 울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못돼 먹은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그때 참으신 눈물을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흘리셨나 보다. 무뚝뚝한 아빠의 사랑은 특히 우리 아이들을 통해 더욱 느끼게 되었다. 어릴 적 우리에게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후회가 되시는 지 당신의 손주들을 통해 많이 표현해 주시는 것을 보며 아빠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아기를 낳고서는 두 달에 한 번 정도 친정에 내려가 2-3주 정도를 머무르곤 했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들은 대단하다고 말한다. 불편하지 않냐고, 아무리 친정이라도 자기들은 그렇게 못 있겠다며 이야기한다. 한 번은 나와 같이 친정에 내려와 있던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 역시 오랜 기간 머무르고 있는 나에게 한 마디 했다.


“유진아 너 정말 부럽다. 엄마가 진짜 잘해주시나 보다. 난 일주일을 못 있겠는데, 그냥 우리 집에 빨리 가고 싶어.”


나는 정말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는데, 왜 늘 그 사실을 거부하려고만 했을까. 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처럼 삐뚤어지게 굴며 스스로를 그렇게도 괴롭혔던 것일까. 그 누구도 나에게 너는 불행한 사람이야 라고 말한 적이 없는데, 왜 나는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느끼면서 그렇게 살아온 것일까. 그래도 지금에서라도 깨달았음에 감사하다. 그 누구보다 사랑받는 존재였고, 존재임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다. 자존감은 누구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이라 여기고 스스로를 비관했던 나는 이제 과거형이 되어 버렸다. 나의 자존감 키우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표지 사진 : Photo by Dmitry Schemelev on Unsplash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