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장 > 자기 연민은 이제 그만
차를 타고 가면 늘 했던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터널을 지날 때 터널 시작 점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숨을 참기. 그렇게 하면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에 늘 터널을 지날 때마다 숨을 꼭 참곤 했다. 그리고 숨 참기를 할 때는 옆에 앉은 사람 모르게 하곤 했는데, 가족들끼리 차를 타고 갈 때에도 혼자 시험 삼아해 보고 그랬다. 당시 빌었던 소원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소원을 이뤄준다는 말이 좋았던 것 같다. 요즘도 택시를 타고 다니면서 하는 게 신호 내에 통과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혼자서 내기하곤 한다. 가령 사거리를 지날 때, 왠지 신호가 바뀌는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으면 통과한다 못한다를 혼자서 마음속으로 가르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나는 무조건 안 되는 것에 승부를 걸었다. 왜냐하면 기대하고 있다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의 허탈함을 수어 번 경험한 뒤로는 차라리 안될 것을 먼저 생각해 두는 편이 낫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럼 되면 좋은 것이고 안 되면 원래 안 될 것을 기대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여길 수 있었다. 이런 나의 비관론에 임용시험에 연속으로 두 번이나 미끄러진 것은 그야말로 확고한 결정타가 되었다.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쇼펜하우어가 말했다. 한창 철학에 빠져있을 무렴 염세주의에 빠져서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들이 하는 말에 심취했었다. 유명하고 공부를 많이 한 철학자들이 하는 이야기이니 더 옳다고 믿었고, 그런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스스로에게 도취해서 한참 동안을 비관적인 생각으로 무장하고 다녔다.
그런 나와는 달리 언제나 긍정적인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고 3 때 나와 같은 반이었고, 나처럼 수능을 망치는 바람에 졸업하고 재수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그 친구와 같이 종합학원을 같이 등록했지만 얼마 안돼 나는 그만두게 됐고 친구는 1년 동안 학원을 다녔다. 그래도 우리는 죽이 잘 맞는 친구이자 재수 동지로 자주 만나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굉장히 똑똑한 친구였고, 공부를 잘했다. 힘든 시간을 함께 보내서인지 고 3 때 보다 훨씬 친해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날 문득 그 친구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 곰곰이 따져보면 그 친구라고 해서 나보다 유독 상황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늘 가라앉아 있었고 그 친구는 늘 즐거워했구나 하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친구는 자신의 과거를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는 외모가 특출 나게 예쁘지도 그렇다고 키가 크거나 날씬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했고, 유쾌했다. 나는 많은 실패를 겪었다고 생각했고 그걸로 인해 스스로 못난 존재라고 여긴 반면 친구는 나와 달랐다. 생각해 보면 그녀도 실패라고 겪을 경험을 많이 했다. 나와 같이 재수를 했고, 특히나 재수를 한 뒤에도 수능 점수에 비해서는 다소 아쉬운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됐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나 같으면 굉장히 우울하고도 남을 일이었는데,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보다 즐거운 대학 생활을 했다. 동아리 모임에 가입하여 그 동아리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즐거운 대학시절을 보냈다. 특히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각종 고시 준비반을 뽑아서 관리했는데, 거기에 뽑혀서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도 했다. 물론 그 시험에는 떨어졌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시험에 낙방하여 우울하다거나 지친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연애가 잘 될 때든 연애가 잘 안 될 때든, 시험에 합격을 하든 떨어지든 친구는 그런 상황에 크게 동요되지 않고 늘 유쾌했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고 한 동안 취직 준비를 할 때에도 비관 모드에 빠지지 않았고, 또 본인이 바라는 회사에 취직하지 못했을 때에도 우울해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 친구의 비관적인 모습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친구가 당시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짐작하지 못했다. 늘 내 상황만 생각하고 나만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사람처럼 굴었으니 그런 것이 보일 리 만무했다. 친구도 분명 우울했고 슬펐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믿었고, 자기가 우울해하거나 비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나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로 인해 우울해하고 슬퍼했다. 그러면 누군가 그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던 것 같다. 신이 있다면 이런 나를 불쌍히 여겨 구제해 줄 것이라 여기고 그렇게 티를 내고 슬퍼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좋은 것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한탄을 하면서 좋은 시절을 다 날려 보내 버렸다. 세상 똑똑한 척하며 잘난 체 했지만 누구보다 어리석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실패의 경험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넌 실패자야.’ ‘넌 실패했어’라고 말한 사람은 없다. 오히려 격려해주고,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응원해주었으면 주었지 나에게 악담을 퍼부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고 비관론자로 살게 했을까? 주변에서 나를 응원해 준 사람들은 정말 많았다. 나의 장점을 이야기해주면서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해준 이들이 그렇게도 많았음에 불구하고 왜 그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닫아버리고 내 생각만 맞는 것이라고 여기고 지내왔던 것일까?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문다. 나는 생각은 누구보다 많이 했지만 정작 행동은 하지 않았다. 연애가 잘 안 될 무렵 왜 내가 관심 있는 남자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을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동기 언니는 늘 한결같은 충고를 해주었다.
‘유진아, 너한테 관심 없는 남자들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너한테 관심 주는 사람을 그냥 만나봐.’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화장을 좀 하고 예쁘게 꾸미는 게 어떨까? 너 자신을 위해서 말이야.’
동기 언니는 나보다 8살이 많았다. 어찌 보면 인생의 대 선배로서 엄청난 충고들을 해 준 것인데, 그런 이야기들을 당연히 실천한 적이 없었다. 언니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했고, 나를 걱정했다. 언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지금은 짐작이 간다. 언니의 말을 진지하게 새겨 들었지만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백번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왜 그리도 고집이 셌던 것인지. 그때 언니 말대로 행동에 옮겼더라면 좀 더 연애 다운 연애를 해 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동기 언니 이야기를 하니 나의 즐거우면서도 우울했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그땐 정말 두 가지가 공존했다. 친구들 때문에 즐거웠지만 좋지 않았던 학교 성적과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연애 때문에 우울한 날들이 혼재한 나의 대학 시절.
“우와 이거 누가 그린 거지? 진짜 잘 그렸다.”
앞서 언급한 적 있는 외부 강사 선생님이 우리 졸업 작품 전시회를 보러 오셔서는 내 그림을 칭찬하신 적이 있다. 유화 그리기 수업이 있을 때 그렸던 작품 중 하나였는데, 교수님이 칭찬하신 작품은 내가 그린 정물화였다. 모작 작품답게 최대한 원본과 똑같이 그리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고, 내가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왔다.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결과물도 내심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성적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그 학기의 성적은 B+를 받는데 그쳤다. 사실 그것 때문에 나의 미술 전공에 대한 열정은 식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열심히 했는데 고작 B+라니. 물론 8명밖에 안 되는 인원 중에서 상대평가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노라 하면서도 예상 밖의 낮은 점수에 너무 실망해 버렸다. 그 이후로 모든 수업에서 한 걸음 꽁무니를 뺀 채로 언저리에 맴돌았다. 물론 너무 개성 넘치는 친구들이 많았고, 다들 워낙 열심히 했다. 그에 기가 질린 걸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변명을 늘여놓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악순환은 시작되었다. 늘 잘한다고 만 칭찬받던 아이가 대학교에 가면서부터는 쪼그라들었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더 열심히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하고 나는 그 대열에서 빠지려고 했다. 대학 시절, 성적도 연애도 별로였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면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기억에 남을 추억들을 쌓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그에 감사한 마음이다.
이제는 더 이상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안 될 것을 생각하지 않고 될 것부터 생각한다. 된다고 생각했을 때 손해 보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고민하고 방황해왔던 것들이 이제야 내 손에 잡힌 느낌이다. 뭐든지 해보면 알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게 되었고, 반복할수록 더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간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그렇게 결론 내려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단지 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할 수 있고 할 수 없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지금 '할 수 있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중얼거린다. 늘 마음속에 할 수 있다를 생각하며 뭐든지 하고 있다. 하루하루 하다 보니 자신감이 생기고 잘하고 있다. 누가 인정하든 안 하든 그 역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스스로를 인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임을 알게 됐다. 나는 지금 하는 사람이다.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고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 나에게 잘하고 있어, 라는 말을 해주지 않아도 나는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이라 여긴 것들을 하루하루 실천하고 있다. 이것이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줄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지금 행복하고 내 삶에 만족한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택시를 타고 사거리를 지날 때, 갈까 못 갈까 마음 졸이지 않고 '무조건이 신호에 통과한다'는 생각으로 기분 좋은 혼자만의 내기를 한다.
*표지 사진 : Photo by Julius Nieves on Unsplash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