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약한 마음

< 4장 > 자기 연민은 이제 그만

by 이유진

아빠는 술을 드시지 않으셨다. 아니 못 드신다고 하는 편이 더 맞다. 젊은 시절 바카스만 마셔도 취했다고 하니 알 만하다. 대신 담배를 태우셨는데, 진짜 많이도 태우셨다. 아주 어릴 때 기억으로는 아빠가 앉았던 자리 뒤 벽지가 누래 질 정도였던 것 같으니, 요즘 세상 같으면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은 진짜 세상 큰일 날 사람이라고 매도당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마 이사를 가면서 집에서는 피지 않으셨고, 그렇게 좋아하시던 담배도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가 쯤 끊으셨다. 담배를 피우는 아빠가 싫긴 했지만 사실 당시 사회분위기는 애연에 대해 관대한 분위기였다. 이렇게 요즘처럼 금연에 대해 적극적인 홍보를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밖에 나가면 담배 피는 사람들이 비일비재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나는 담배를 정말 싫어한다.


아빠가 담배를 피는 대신 술은 입에도 안 대셨기 때문에 나는 술주정하는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았다. 술주정이라는 것을 볼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빠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니 처음에 그런 것들을 겪었을 때 너무 당황스러웠다. 친구들이 술을 마시면 종종 울면서 한탄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내 가장 친한 친구가 그럴 때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나도 술을 전혀 안마시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빠의 체질을 닮은 지라 술에 익숙하지 않았고, 취하면 잠이 들거나 했다. 대학 때 몇 번 취하게 마셔본 일이 있으나 이불 속 하이킥을 불러일으키는 과오를 두어 번 저지른 후에는 취하게 마시는 것은 피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술 취한 이들이 말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 그저 취하면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고, 괴롭다는 것 뿐.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이 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져 하는 행동들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그들의 눈물에 나는 익숙해 질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도 내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의 눈물에 어찌할 바를 잘 모르겠다.



“엄마, 이거 해주세요.엉엉”, “엄마, 엄마, 아야했어요. 엉엉”


간난쟁이가 우는 것과 말을 할 줄 알게 된 아이가 떼쓰면서 우는 것은 조금 다르다. 첫째가 한 동안 무슨 말을 해도 징징대는 때가 있었는데, 우는 소리에 장사 없다고 좋게 받아주다가도 반복 되니 화를 낼 때도 있었다.


“운다고 다 해결되는 거 아니야. 울지 말고 말 해 주세요.”


학교에서 늘상 했던 레파토리를 고작 36개월도 안된 첫째 아이에게 매번 하곤 했었다. 첫째가 한창 짜증을 내던 무렵에 갓 태어난 둘째가 있어서였을 수도 있다. 나도 눈물이 나는 상황에서 나는 울 수 없고 그 눈물을 받아주어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뭐 한창 힘들었을 때는 아이들도 울고 나도 같이 운 적도 있긴 하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눈물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은 무언가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울었다. 특히 저학년일수록 그런 성향이 컸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자기의 생각, 혹은 억울한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랴. 아이들은 늘 억울한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풀어주려면 그저 들어주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일단 말을 해야 알 수가 있는데 마냥 울기만 하고 있으면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아이들의 말을 유도하려는 생각으로 저 말(운다고 해결되는 거 아니야. 울지 말고 말 해 주세요)을 반복적으로 하곤 했지만 막상 내가 들어보니 결코 기분 좋은 말은 아니었다. 어려서는 부모님께 혼이 날 때,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랑 종종 싸울 때 저 말을 많이 들었는데, 나 같은 경우는 오기로 말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효과가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눈물을 싫어하는 나는 정말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남편과 싸우면 억울한 마음에 그저 눈물부터 났다. 그럴 때 마다 아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됐다. 뭐가 억울한지 그렇게 울어댔는데, 물론 남편은 그렇게 우는 나를 받아줄 때도 있었지만 싸움이 잦아질 때에는 자꾸 우는 나를 받아주는 대신 ‘울지 마라고, 울면 다 해결되냐’고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나에게 하곤 했는데, 그럴 때 더 서러워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이렇게 적으면서 그 상황을 떠올리니 웃기기만 하다.


남편 역시 나랑 싸우다가 운 적이 있다. 그럴 땐 겁이 난다. 내가 또 너무 몰아세웠구나 싶은 마음에 덜컥 미안해졌다. 지금 생각하면 늘 나의 뾰족한 마음은 밖에서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집에 와서 엉뚱한 사람한테 드러내며 찔러댔던 것 같다. 밖에서는 세상 착한 사람인 것처럼 굴다가 뭐 하나 잘못한 것을 가지고 몰아세워댔으니 그 사람은 또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다.


남편은 로맨스 영화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늘 액션만 보는 편인데, 한 창 아이들을 재우고 밤 시간의 드라마를 즐길 무렵 영화가 보고 싶어 [노트북]을 보자고 꼬여서 한 번 본 적이 있다. 나도 사실 눈물 줄줄 흘리는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워낙 유명한 영화였기 때문에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영화는 진부했다. 초반에는 그렇다고 여겼다. 남녀의 빈부 차, 그로인한 결혼 반대, 뻔한 스토리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갈수록 몰입하게 됐다. 결국 마지막 부분에서는 정말 눈물을 펑펑 쏟을 수밖에 없었다. 치매에 걸린 부인을 극진히 간호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그저 눈물이 날 수 밖에 없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서로 한 사람을 보면서 사랑을 한다는 자체도 놀라웠고, 저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병이 든 자신의 배우자를 극진히 돌보면서 아끼는 마음에 그저 놀라웠다. 영화가 끝나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라는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고 더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오빠,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엉엉, 너무 슬퍼.”

“이것 봐, 이래서 내가 이런 영화 안 보려고 하는 거야. 뭘 울고 그래. 저렇게 살면 되지.”


핀잔을 주면서도 눈물을 닦아주며 안아주던 남편이 기억난다. 물론 그 이후로는 둘이 같이 로맨스 영화를 본 기억은 없다.



나는 늘 센 사람이 부러웠다. 강해보이는 사람들. 자기의 기분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누군가에게 정면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의 감정을 내보이지 못한 채 자신의 의견을 눌러버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타인을 무안하게 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아마도 내가 그런 무안을 당하기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이 나를 거절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부탁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니 그 사람이 나에게 부탁하기 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를 생각하면 그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상대방을 무안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거절하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됐다. 부탁이라는 것은 들어줄 수도 거절할 수도 있는 것이지 무조건 해야만 하는 강요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부탁을 하기 까지 많은 고민을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지만 상대방의 거절을 당연히 염두해 두고 자기가 필요한 것을 부탁하는 사람도 있다. 후자가 세상을 사는 더 현명한 방법임을 알게 되었다. 나약했던 나의 마음은 늘 눈물로 표현되었고, 그것이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하며 다람쥐가 챗 바퀴를 돌 듯 벗어나지 못했는데, 이제야 조금 내가 그동안 잘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역시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내가 아이에게 책을 통해서든 일상 경험을 통해서든‘울지 말고 예쁘게 말해 주세요’ 하고 연습을 시키듯 나도 연습이 필요하다. 나약한 마음에서 벗어나서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부탁하는 것도 연습이다. 내가 혼자 하기에 무리가 되고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부탁을 해야 한다. 상대방이 거절할 수 도 있다는 것을 항시 염두해 두고 거절당함에 있어 상처받지도 말고 그에 어떤 의미부여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움 받을 수 있는 용기] 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나와 같이 나약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일지 모른다.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자신의 나약한 마음을 숨긴 채 강해 보이기 위해 자기만의 방어 장치를 갖추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나에게는 어떤 방어 장치가 필요한 것일까. 그간 거절하지 못한 채 받아주는 것을 나의 방어 장치로 해왔다면 이제는 그것을 버리고 새로운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선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자. 나의 나약한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나 자신을 먼저 인정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 내가 그 방법을 알아야 우리 아이들에게도 알려줄 수 있을 것 아닌가. 항상 내 곁에는 나의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자.




*표지 사진 : Photo by Arwan Sutant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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