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장 > 자기 연민은 이제 그만
“야, 애들 그림 그만 그려라. 니 도대체 뭐하는데?”
나의 절친이 결국 한 마디 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당시 수행평가라는 것이 도입돼서 숙제가 많아졌다. 시험 외에 평가하는 항목이 늘어남에 따라서 해야 할 일들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미술학원을 다닐 때 포스터 칼라로 그림을 그리는 ‘구성’이라는 영역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배워서였을까. 나는 수채화 같은 그림은 잘 못 그렸지만 포스터 칼라로 영역을 나눠서 색칠하는 구성 부분에는 꽤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인정을 받았다. 하필 또 당시 미술 수행평가가 구성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어서 그야말로 나에게 주문(?)이 물밀 듯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도와주려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조금씩 도와주다 보니 끝내는 내가 다 그려주는 꼴이 됐다.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미련스럽게 그림을 그리는 나를 보고 친한 친구가 결국 한 마디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뭘 잘못하는지를 몰랐다. 그냥 도와달래서 도와줬던 것인데, 이게 그리 잘못된 일인가 싶을 정도로만 여겼다.
중학교 때는 꽤 공부를 잘하는 편이라 친구들을 많이 가르쳐 주곤 했었다.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친구가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에게 물으러 왔었는데, 아마 시험 직전까지도 알려줬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나는 필기 노트 같은 것도 아무 대가(?) 없이 빌려줬다. 그래서 였을까. 반 친구들은 다른 모범생 아이들을 제쳐두고 유독 나에게 부탁하고 요청했다. 나는 당시 그것을 뿌듯하게 여겼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냥 만만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까탈스럽게 굴지 않았던 것이 아이들에게는 부담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겠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나를 알았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화는 수없이 많다. 특히 그 당시에는 조별 활동이 너무 많았다. 무슨 활동이든 조별 활동을 했는데, 당연히 아이들은 나랑 같은 조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당시 담임 선생님은 조를 한 번 정하고는 한 동안 바꾸지 않으셨다. 그렇게 한 참을 변동없이 지내다가 조를 한 번 바꾸자고 하셨을 때 나는 찬성을 했고, 그 일로 인해 같은 그룹에 있었던 친구랑 대판 싸우기까지 했다. 갑자기 왜 조를 바꾸려 하냐고 따지는데 난 그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무척 억울했지만 결국 조는 바뀌지 않은 채로 한 학기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그 친구와는 아직도 연락하며 지내지만 친구는 과연 그 일을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좀 바보 같다 싶지만 당시에는 나를 찾는 친구들이 많았고 친구들이 나를 좋아해 주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사실 나에게 있어 큰 고민거리는 아니었다. 내가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도와준다는 사실이 즐거웠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고등학교 가서는 각자 공부하는 일이 바빠져서였을까 중학교 때만큼 그런 일들은 없었기에 거기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된 이유는 재수를 하기 시작할 때부터였다. 초, 중, 고등학교 등하굣길을 함께하는 친구가 있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우리는 바로 옆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같은 학교를 다녔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대부분의 것들을 그 친구와 같이 했다. 그런데 고3이 끝나고 그 친구는 대학교를 가게 됐고, 나는 재수를 하게 되면서 무려 10여 년을 함께 하던 친구와 헤어지게 됐다. 그때부터 처음으로 혼자 다니기 시작했는데, 혼자 다니면서부터는 이상한 일이 자꾸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위 ‘도를 아십니까’ 군단이 붙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따라 간 일도 있었다. 이 일들은 선생님이 돼서 서울에 올라와서도 끊이지가 않았다. 어김없이 혼자서 걸어 다니는 날이면 꼭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수법도 각양각색이었다. 눈에 총명한 빛이 서려 있다는 둥, 지금 근심이 있어 보이는데 이 그림을 한 번 맞춰보라는 둥. 그렇게 사람이 차고 넘치는 지하철 역에서도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접근하는 그들을 보면서 몸서리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번은 학급 비품을 사러 혼자 버스 타고 시내에 나갔던 길이었다. 당시 대전에서 일할 때였는데, 같이 일하던 동기 동생이랑 시간이 안 맞아서 혼자 나간 것이 화근이었다. 볼 일을 다 보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데, 어떤 여자가 다가와서는 근심이 있어 보인다며 그림으로 내 상태를 알아봐 주겠다고 접근했다. 당연히 시험 준비 때문에 늘 걱정이 가득할 때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은 채 미술심리치료 같은 건가 하는 호기심이 일어 그 여자가 보여주는 그림을 보면서 시키는 대로 했다. 그걸 하다 보니 어느새 찻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내가 있었다. 나보고 제사를 지내야 한다면서 몇 날 며칠에 어디서 만나자고 구체적으로 장소까지 알려주었고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웃긴 것은 찻값을 내가 계산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니 지금 어디야?”
“차 한잔 마시고... 지금 버스 탔어... 엉엉”
“언니 미쳤어? 차를 왜 마셔어? 못살아 내가... 뭐야 지금 울어? 진짜 언니 때문에 못 살겠다.”
그렇게 울면서 지인과 통화한 기억이 난다. 그들이 접근하는 수법은 늘 비슷했는데, 왜 나는 한결같이 속아 넘어간 것일까. 이런 바보 같은 일이 한 번으로 끝났으면 족했지만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발생했다. 심지어 편의점에 같이 가서 세제를 사준 적도 있다. '도를 아십니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친한 선생님들한테 한 번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정말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로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아니 똑똑한 줄 알았는데 웬일이냐며, 다시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마라고 충고했다. 사람은 참 알다가도 모른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하는 소리라고 여기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남편을 만나면서 이 문제는 많이 해결됐다.
“넌 너무 사람을 믿어서 문제야.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어. 정신 차려야 해.”
여러 번 이런 일들을 겪고 나자 남편은 정말 걱정스럽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그것 때문인지 요즘은 혹시나 나에게 말을 걸라 싶으면 쏜살같이 자리를 피하는 스킬을 갖게 됐다. 예전에는 왜 그 사람들의 말을 거절하는 것이 뭐가 그리 미안한 일이라 여긴 것인지. 내가 생각해도 그 시절의 나는 너무했다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사건과 비슷하게 내가 호구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것은 학교에 근무하면서이다. 나름 빠릿빠릿하게 일을 잘했기 때문에 나에게 많은 일들이 배정됐다. 당시에는 내가 할 수 있을 정도라 여겼기 때문에 주어진 일에 크게 불만 갖지 않고 일을 했고, 부장님이나 교감선생님께서 부탁하시는 일들은 웬만하면 도와드리곤 했다. 그런데 한 번은 2번 연속으로 동학년을 함께 했던 부장님이 당시 학년의 일은 거의 나에게 맡기다시피 하고는 본인은 당신 일만 처리하셨다. 나중에 주변 선생님들로부터 왜 동 학년을 두 번이나 했냐고 물어보셨을 때, 난 정말 그런 의도로 나와 함께 동학년을 제안하신 줄은 몰랐다는 대답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분의 일만 도와드리면서 2년을 보냈지만 그분은 승진하고자 하는 자기의 의도에 맞게 계획한 대로 할 일을 다 하시며 결국은 점수를 채워서 승진하셨다. 당시에 그 의도를 알고 정말 화가 많이 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대로 거절하지 못한 내 잘못이 가장 큰 것이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해달라고 한다고 다 해주었던 내가 바보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됐다. 왜 모든 것은 그 당시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인지. 나는 참 바보인가 싶다.
어려서부터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나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그렇게 내 인생을 갉아먹고 있었다. 스스로가 스트레스받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지만 그 일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런 일들로 나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혹은 호구인가'로 여기며 우울한 시절을 보냈다.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모르고 그저 호구라고 여기며 많은 날들을 날려 보낸 것이다. 한 번씩 이런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면 그걸 이제야 알았냐고, 왜 그렇게 말릴 때 그때는 몰랐냐며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곤 한다. 내 생각이 옳다 믿는 내 고집도 한 몫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것이 절대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은 나에게도 부합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나의 인생에 나는 없고 다른 사람이 먼저 존재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인데, 바보 같지만 이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늘 밖에 나가서는 그리 좋은 사람일 수가 없었던 우리 아빠가 집에서는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인 아빠이자 남편이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것이 불만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아빠의 모습을 꼭 닮은 사람으로 자란 것이다. 밖에서는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뭐 하나 따지지 못하면서 남편한테 화풀이하고 불만을 쏟아내는 못난 아내가 된 것 처럼 말이다.
물론 지금도 능숙하게 거절하지는 못한다. 아직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은 목표가 있기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해타산을 떠나 적어도 내 삶에 내가 중심이 되어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거절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고, 올바른 거절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 냉정한 것이 아니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늘 남편이 냉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냉정하고 나쁜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최선의 판단이었음을 이해하게 됐다. 나를 잘 알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그동안 나에게 했던 충고가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지인들은 내가 호구는 아니라고 나를 위로하지만 나는 호구였다. 이제는 호구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내가 원하는 바가 분명해진 삶에 내가 바로 선택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고 결정이고 그것이 내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것임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되었다.
* 표지 사진 : Photo by Drahomír Posteby-Mach on Unsplash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