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즐거운 학교 생활

<3장> 내 안에 꿈이 있습니다.

by 이유진

“선생님, 저 이담에 정말 훌륭한 사람이 돼서, 선생님 꼭 만나러 갈게요.”


나에게 와서 말할 때에 온 몸을 베베 꼬며 배시시 웃으며 이야기하던 꼬마 숙녀가 있었다. 늘 무섭고 딱딱하게 말하던 내게 다가와 생글생글 웃었던 그 아이는 지금 아마 대학생이 되어 있을 나이이다.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할머니의 사랑을 너무도 많이 받고 자란 어리광쟁이였다. 4학년이라 할 수 없을 만큼 아기 티를 벗지 못한 친구여서 나를 유독 무서워했었다. 자신의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는 나에게 서운했는지 처음에는 많이 경계하고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던 아이가 1년간 훌쩍 자라서는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매번 내 주위를 떠나지 않고 늘 재잘거렸다. 훌륭한 사람이 돼서 나를 꼭 찾겠다던 그 아이가 어떻게 자랐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시험의 합격과 동시에 나의 첫 아이들과는 헤어지게 되었다. 아이들은 5학년으로 진급할 예정이었고, 내가 학교를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은 선생님 진짜 가는 거냐고 거듭 물어보곤 했다. 당시 학부모님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그때가 아마 학부모님들로부터 도움도 가장 많이 받았고, 긍정적 관심을 많이 받은 때로 여겨진다. 종업식 때 주신 선물들을 아직도 갖고 있는데, 그중에서 아직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수건이다. ‘선생님 감사해요 사랑해요 OO가'라고 적힌 수건 두 장. 사실 받고 나서는 아까워서 몇 년간 고이 모셔두었다. 결혼하면서 그 수건을 잊지 않고 챙겨 왔는데, 결혼하고서도 1년인가 지난 후에 개시했다. 지금도 그 수건을 보면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던 볼이 통통했던 아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해 1년간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었던 만큼 나도 학부모님들과 아이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자취하면서 일하랴 공부하랴 돌아보면 정말 힘든 시간이었지만 내 인생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보석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서울에 왔다. 임명장을 받고 발령을 받았다. 너무 기뻤다. 긴 방황의 시간을 지나서 드디어 어딘가에 소속이 된 것이다. 정식으로 어딘가에 속한 일원이 되어 누구한테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나의 직업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


처음 발령을 받아 학교에 가서 교무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칠판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대학교 동기 이름이었다.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서 깜짝 놀랐다. 학교 다닐 때에는 그저 얼굴만 알던 동기였는데, 학교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그리 반가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친구도 재수한 경력으로 나와 동갑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그 친구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처음 학교에 적응함에 있어 친구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당시 그녀도 6학년 담임에 연구학교 기간과 겹쳐서 엄청 바쁘고 힘든 시기였음에도, 동기라는 이유로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이다음 해에 또 한 명의 대학 동기가 우리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그 친구 역시 같은 학번에 재수로 인해 나이가 같았다. 학교의 특성상 우리 학교 동기를 같은 근무지에서 만나는 경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같은 학번의 동갑인 친구라니! 참 일어나기 힘든 조합이었다. 그렇게 우리 셋은 대학교 때는 서로 얼굴만 알던 존재였지만 같은 학교에 발령받게 되면서 동료이자 또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나의 서울 살이 및 학교생활에 있어 정말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을 만났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간 힘들게 고생한 나에게 신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싶다.


운동을 좋아하던 나에게 운동을 좋아하시던 교장선생님의 발령 역시 운이 좋은 일이었다. 교장선생님은 교사들의 운동을 적극 권장하셨고, 매주 한 번은 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보통 학교에서는 테니스보다는 배드민턴을 많이 친다. 아무래도 테니스는 코트를 마련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실내에서 쉽게 칠 수 있는 배드민턴이 대세였다. 대학교 때 테니스 동아리에 가입해서 활동한 경험이 배드민턴을 치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교장선생님이 워낙 배드민턴 치는 걸 좋아하셨고, 또 잘 치시기도 했다. 워낙 적극적이시다 보니 못 이기는 척 나오시는 선생님들도 계셨지만 막상 나와서 운동하시면 또 좋아하시곤 했다. 나와 내 대학 동기 중의 한 명은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우리 둘은 배드민턴을 정말 열심히 쳤다. 게다가 그 친구는 따로 레슨을 받을 정도로 배드민턴 치는 것을 좋아했다. 운동을 같이 하면서 다른 선생님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사실 초등학교 특성상 교실에만 있으면 동 학년이 아닌 다른 선생님들과 교류하지 못할 일이 많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씩 배드민턴을 치다 보니 다른 선생님들과도 만날 계기가 생겼고, 같이 운동을 하다 보니 더 친밀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큰 학교가 아니라서 해야 할 업무는 많았지만 선생님들 간에 끈끈한 유대감이 있었다. 학교 역시 사회생활인지라 결국 인간관계가 큰 몫을 차지했다. 선생님들과 동기 친구들 덕분에 원만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고, 거기에 운동도 한몫했으리라 여긴다. 거짓말 아니고 한 2여 년 간은 매일 아침 학교 가는 길이 소풍 가는 날처럼 신나고 즐거웠다.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정말 축복받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매년 3월이 되면 학교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말 그대로 벚꽃 바람이 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한 바퀴를 돌면서 벚꽃 엔딩 노래를 불렀다. 물론 2학년 아이들이라 노래를 잘 몰라서 나 혼자 불렀던 기억이 난다. 내 노랫소리에 깔깔대며 반주를 넣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 그때는 미세먼지 이런 걱정이 없을 때라 정말 마음껏 봄바람의 꽃향기를 마셨다. 달리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저 웃으며 좋아하던 아이들. 밥을 안 먹고 버티던 아이도, 선생님 뱃속에는 아기가 있냐고 묻던 아이도, 책 바로 밑에 있던 연필을 못 찾아서 울던 아이도, 공부도, 운동도 뭐든 열심히 하던 아이도 이따금 한 번씩 생각이 난다. 그 아이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들로 살아가고 있을까?



처음 대학교에 갔을 때에는 고등학교 같았던 학교도 싫었고, 교사가 내게 맞는 직업인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했었다. 특히나 초등교사라는 것이 괜찮을까 싶어 복수전공을 통해 중등 영어 교사 자격증을 따 놓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서 영어 수업을 듣고 몇 학점을 이수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가 3학년 때 실습을 가게 되고 실습에서 좋은 경험을 통해 초등교사가 의외로 적성에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4학년 때 경험 한 실습이 큰 도움이 되었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아이들이 참 귀여웠고,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의외로 재미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물론 실제 학교 현장은 실습 때와는 또 달랐지만 운이 좋게도 좋은 동료 선생님들과 아이들 덕분에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은 것은 사실이다.


적성에 맞는 직업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언젠가 인가부터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게 되고 소중함을 여기지 못하게 되는 순간도 찾아왔다. 교사로서의 소명감도 있지만 현실 속에서의 직장인도 있었다. 사람들은 선생님도 직장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나 역시 ‘교사는 이래야만 해’ 하는 알 수 없는 기준이 생겼고, 그 공식 가운데 나를 집어넣으려고 했다. 어떤 목표도 없이 그저 열심히 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그저 열심히만 했던 날들이었다. 주어진 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지만 누구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을 위해서 하는 알 수 없는 채 그저 열심히만 살았다. 어찌 보면 미련한 바보 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딱히 승진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그저 답답했었다. 늘 '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무엇인가를 뒤적뒤적 찾아보기는 했었다. 하지만 찾다가 그만, 좀 하다가 그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뭘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합격할 때까지 공부한 세월이 지겨워서였을까. 특히 마지막 한 해는 직장인으로 또 수험생으로 정말 열심히 살았기에 그냥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공부가 지긋지긋했다. 사는 곳을 옮기게 되고 환경이 바뀌니 거기에 적응을 해야 했고, 개인적인 생활도 누리고 싶었다. 드문 드문 배우다가 말았던 바이올린도 다시 시작하면서 그냥 여유로운 직장인의 삶을 살고 싶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면 바이올린도 배우고, 친구도 만나고 연애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냥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내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간 공부하면서 누리지 못했던 내 삶을 좀 누리고 싶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그 순간순간은 참 열심히 살았다.

휴직 이전, 나의 학교 생활은 결론적으로는 즐거웠다.(물론 중간중간 힘든 일도 당연히 있었다.) 적성에도 맞았고, 수업도 수업 외 업무도 척척 잘 해냈다. 하지만 그저 나는 잘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내 안에 꿈을 모른 채 하면서 그저 열심히 사는, ‘내가 사는 세상’ 밖에 몰랐던 시야가 좁은 모범생이었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