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공간과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아서 전시 제목을 보고 문학을 어떻게 공간으로 풀어냈을지 무척 궁금했다. 주말에는 국현(국립현대미술관) 예약이 꽤 힘든데, 아침부터 취소표를 기다리다가 운 좋게 한자리가 비어서 전시가 끝나갈 때 즈음 간신히 다녀왔다. 이번 전시는 1930~40년대 조선에서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던 경성 예술가들의 작품을 그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국현 덕수궁관은 가운데 중정을 두고 2, 3층 양옆에 전시장이 있어 대체로 4부로 전시가 구성된다.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였는데, 전시장마다 다른 방식으로 책을 경험할 수 있어서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1부는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해 동료 예술가들과 토론했던 이상의 다방에 들어가는 것을 시작으로, 그곳에서 관계 맺었던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향을 준 서양 예술가들의 작품이 함께 전시되어 조선이 서양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었다.
이상의 다방으로 들어가는 문
영향을 받은, 영향을 준 작품
2부는 ‘지상(종이 위)의 미술관’이라는 제목답게 신문, 잡지, 책의 3가지 인쇄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꼭 유서 깊은 도서관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전시장에 처음 들어서면 일렬로 쭉 서 있는 스탠딩 테이블에 신문이 놓여 있어 직접 넘겨볼 수 있었고 그 뒤쪽으로는 당시의 책들이 유리 기둥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잡지를 볼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있어서 공간 전체에 책의 기운이 흐르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공간이었다.
2부 전시 전경
3부는 1대 1로 관계 맺은 화가와 문인들의 작품,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후기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는데 그 관계들을 벽으로 구획해 공간적으로 예술가들의 관계를 알아보기 좋았다.
관계맺은 예술가별로 구획된 벽
마지막 4부는 화가이자 문인이었던 작가들의 그림과 글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가운데에 벽등과 벤치가 놓여 있어 편하게 앉아 책을 읽으면서 벽에 걸린 그림들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풍경을 그린 그림들이 많아서 마치 길가의 벤치에 앉아 풍경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한 이곳은 전시의 마지막 섹션인 만큼 앉아서 전시를 복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4부 전시 전경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인쇄물들을 그 특성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었고, 그와 동시에 공간 구성을 통해 예술가들의 관계 또한 잘 보여주어서 주제가 시각적으로 잘 구현된 멋진 전시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