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형민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독후감
기존의 건축 역사는 유럽의 양식을 중심으로 적혀 왔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한 근대 이후 사회에서 건축은 더 이상 양식의 건축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저자는 19세기부터 미국의 사회적 변화와 함께 변화된 건축 담론,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의 역사를 추적한다.
근대로의 이행기였던 19세기에 여전히 전통적인 규율은 유럽이 가지고 있었고 미국 건축가들 역시 프랑스의 명문 학교 에콜데보자르에서 수학했다. 보자르 건축가들은 양식 건축의 최후 계승자라고 볼 수 있는데, 보자르 건축의 핵심은 아날리티크와 에스키스이다. 아날리티크는 건축의 요소, 에스키스는 이들의 배열을 가리키는데 아날리티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에스키스이며 에스키스 역시 또다른 아날리티크가 될 수 있었다. 문, 기둥, 창문 등 다양한 건축 요소의 아날리티크가 존재했고 학생들은 다양한 유형의 아날리티크를 체화하고 이들을 조화롭게 배치하는 에스키스 연습을 했다. 부분과 전체의 조화와 관계가 보자르 건축의 핵심이었으며 그 형태는 그리스, 로마 건축에서부터 이어진 고전 건축의 비례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엽 이후 서구중심주의가 비판 받으며 유럽 내에서도 하나의 절대적인 규범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규범에 기대어 있던 보자르 건축은 이전과 같은 공고함을 유지할 수 없었고, 현실적 조건들로부터 벗어나 사회의 이상향을 표현한다는 이들의 목표 역시 자본주의가 시장을 잠식하며 지키기 어려워졌다. 대중 건축과 이상 건축을 구분짓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다. 비판적 역사의 시대와 함께 자본주의가 건축을 잠식하며 건축가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건축가의 역할을 모색했다. 부동산 시장과 건축가들이 찾은 역할은 ‘프로그램’이었다. 보자르 건축가들이 형태를 통해 이상을 구현하려 했던 것과 달리 근대 건축가들은 건축의 목적인 프로그램을 순수한 형태로 구현함으로써 과거의 건축으로부터 독립하고 새로운 건축 규율을 만들고자 했다.
건축가들은 당시 미국 산업을 지배한 과학적 관리론의 방식이었던 다이어그램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구상했는데, 보자르 건축가들의 도면과 근대 건축가들의 다이어그램은 개념과 형태가 연결되었느냐, 끊어져 있느냐의 차이에서 온다. 근대 건축가들은 사회적 조건을 분석한 다이어그램에 기반해 건축을 설계함으로써 형태가 아닌 프로그램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근대 건축가들의 다이어그램이 온전히 개념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건축은 결국 실제 공간으로 물성화되어야 하는데, 다이어그램이 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다이어그램으로 사고하는 과정에서 그 원료가 되는 ‘사회적 조건’들은 건축가에 의해 ‘배열’되며 자의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조건은 지켜지면 될 뿐 꼭 형태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건축가가 조건을 형태로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는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망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순수한 형태화라는 근대 건축가들의 목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과거의 규율이 힘을 잃고, 그 대안으로 찾아낸 프로그램과 다이어그램을 통해서도 과거의 규율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지금의 건축가들은 이 시대의 새로운 건축 기율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한다.
공간디자인 학부 시절 나는 수업에서 의미로부터 형태를 도출해내는 디자인 방식을 배웠다. 개념을 디자인으로 구현하는 과정은 상당히 억지스러웠지만, 형태의 근거를 찾고 이를 통해 내가 내 디자인을 인정할 수 있었던 방식이었다. 사회적 조건을 분석해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형태화하는 방식은 형태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 건축에서 디자이너들이 의지할 수 있는 규범이 된다. 결국 나는 어딘가 의지하기 위해, 내 디자인이 존재 가치가 있다는 믿음을 찾기 위해 매 프로젝트마다 사회적 조건에 맞는 디자인적 규범을 만들어냈다. 공간 디자인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편집 디자인 수업에서도 그랬다. 보편적인 디자인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의 규범을 따르는 것도, 스스로의 규범을 만드는 것도 모두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과거의 규범을 따르는 경우에도 그 근거를 대기 위해서는 결국 스스로 세운 원칙이 필요하기에, 현대의 디자이너들은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게 된다.
절대적인 형태 규범은 종교와도 같다. 공통의 종교가 없는 현대 사회에서 나는 매번 일시적인 종교를 만들어 낸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완성될 때, 즉 완벽한 규범이 만들어졌을 때 창조자인 나는 그 속에서 잠시 동안 안락함을 느끼고 불안감을 잊는다. 하지만 목표로 삼았던 작업이 완성되는 순간 이는 곧장 부산물이 되고, 나는 또다시 종교를 잃는다. 그리고 의지할 곳 없는 나는 다시 불안감 속에 떠돌며 새로운 규범을 찾아 새로운 작업에 나선다. 이것이 디자인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절대적인 권위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의 책임을 나눠 가지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믿을 것은 스스로 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의 종교 찾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