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라는 행위의 부산물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

by Haim Jung

전시 기간: 21.06.08-21.08.08

관람일: 21.07.06



필 환경 시대답게 이제는 전시 디자인에서도 환경문제를 고려하는 사례들이 자주 보인다. 특히 이번에 본 서울시립미술관의 《기후미술관: 우리 집의 생애》는 환경 문제의 현 모습을 알리고자 하는 전시 기조에 맞추어 전시 디자인 또한 최대한 낭비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전시 보조물은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물건을 재활용한 것이다 보니 전시장은 전체적으로 날것을 최대한 다듬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시트지 대신 전시장을 가득 채운 A3 이면지였다. 보통 전시에서는 시트지를 이용해 기조나 캡션을 벽에 붙이는데, 《기후미술관》에서는 A3 이면지에 인쇄하는 것으로 페인트와 시트지를 대신했다. 일반적인 전시에 당연히 쓰인다고 생각한 시트지를 쓰지 않았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종이에 인쇄되는 이미지도 잉크를 덜 쓰도록 디자인했다는 점에서 디자이너가 제작 공정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전경
전시장 벽의 A3 이면지

전시장의 이미지들은 모든 면적을 꽉 채워 인쇄한 것이 아니라 특정 패턴을 띠며 비어있다. 한글 폰트는 글자에 점점이 구멍이 나 있고, 벽 전체를 덮은 이미지들은 A3 용지의 인쇄 영역 때문에 종이 외곽의 인쇄되지 않은 테두리가 모여 격자무늬를 이룬다. 그리고 인포그래픽은 육각형 망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일정한 패턴들은 꼭 자연의 프랙탈 구조를 떠올리게 하는데, 그중 벌집의 육각형 구조는 대표적인 프랙탈 예시 중 하나로, 적은 양의 밀랍으로 가장 안정적인 집을 지을 수 있는 형태라고 한다. 잉크의 양을 밀랍의 양에 비유한다면 , 《기후미술관》은 가장 적은 양의 밀랍으로 가장 튼튼한 집을 지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전시 그래픽


그래픽 외에도 못으로 고정한 조명, 스티커로 고정한 캡션, 재활용한 가구 등 작품을 보조하는 설치물들 역시 낭비를 최소화했다는 것이 전시를 보는 내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의도를 전시의 맨 처음과 끝 벽을 할애해 설명한 것이 좋았다. 설명이 전시 주제를 더 강화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고민을 하는 창작자들의 존재를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를 보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최근에 본 전시 중 가장 인상적인 전시 중 하나였다.

기존 물건을 최대한 재활용한 설치물들
전시디자인에 관한 설명과 전시 크레딧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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