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한 정교함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메리 코스: 빛을 담은 회화》

by Haim Jung

전시 기간: 21.11.02-22.02.20

관람일: 21.11.06



메리 코스는 전시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회화에 빛을 담는 미국의 작가다. 활동 기간이 60년에 이르는 굉장한 경력을 가진 작가인데, 이번에 처음 한국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6개의 크고 작은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어서 60여 년에 걸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시기별로 나누어 조명하고 있었다.


전시의 첫 섹션은 작가의 최신작을 볼 수 있는 '흰 빛 회화'다. 전시장 한가운데 서있는 초기작을 중심으로 해당 작품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벽에 걸려 있다. 작품을 보면서 빛을 담는 회화답게 전시장의 조명이 보통 전시들과 다르다고 느껴졌다. 보통 전시를 감상할 때, 작품이 잘 보이도록 관객이 작품 앞에 서도 그림자가 최대한 지지 않도록 설계한다. 반면 이 전시는 작품에 관객의 그림자가 지는 것을 의도했다. 전시에 소개된 작가의 말 중 '예술은 관람자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이는 작품을 보는 관람자의 위치나 생각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주관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래서 전시는 관객의 그림자조차도 작품의 일부로 감상하도록 조명을 설계했다. 더군다나 물감 속에 반사 물질이 섞여 있어 조도가 어두운 것이 작가만의 독특한 그림 재료를 소개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섹션 1 '흰 빛 회화' 전경
작품에 비치는 그림자

2 섹션은 '색채 회화'로, 작가가 흰 그림에 검은색, 3 원색의 색채를 더한 시기의 작품이 전시된다. 2 섹션의 첫 작품이 흰 빛에서 여러 색채로 넘어가는 다리를 잘 표현해주었는데, 흰 그림에 검은색 라인이 그어진 작품을 통해 작업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암시했다. 이후 2 섹션에서는 흑백, 또는 흑백에 3 원색 중 하나의 색이 들어간 작품들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는 작품의 캔버스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평면을 의도한 작품은 캔버스를 모서리를 깎아 벽으로부터 떠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입체를 의도한 작품은 캔버스의 직각 모서리를 그대로 사용해 벽과 작품이 이어지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림에서 벽과 이어지는 부분의 색이 흰색이 아닌 다른 색이었다면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벽에 컬러 시트를 붙였을지도 모르겠다.

1-2 섹션을 연결하는 두 작품
평면성이 강조된(왼), 입체성이 강조된(오)

3, 4 섹션에서는 메리 코스가 작업 중간중간 시도한 금속 물질, 빛 자체를 작품으로 구현한 실험작들이 전시된다. 그리고 5 섹션으로 넘어오면 처음과 반대되는 색을 가진 '검은 빛 회화'가, 마지막 6 섹션에는 '검은 흙'이 나온다. 검은 빛 회화는 시기적으로는 1 섹션 다음에 등장해야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다섯 번째로 배치되었는데, 아마 서로 붙어있어야 하는 5, 6 섹션의 작품이 앞쪽 전시실에 배치하기는 물리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곳에서는 작가가 사용하는 금속 물질의 입자가 훨씬 커져서 빛을 더욱 강렬하게 반사한다. 그래서 작품을 이동하면서 볼 때 작품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되고, 이는 작가가 말했던 예술의 주관성이 더 극대화된 것으로 보인다.

섹션 3, 4의 실험작
섹션 5 '검은 빛 회화' 작품 일부

마지막 6 섹션에서는 작가가 살던 집의 대지를 본떠 도자기로 제작한 '검은 흙'이 전시된다. 그동안의 작품들은 빛을 회화에 담았지만, 이곳의 작품은 대지를 회화에 담은 것이다. 빛과 대지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수 불가결한 존재들로, 이 소재들은 작가가 중요시하는 '주관성'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작품을 보다 보면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을 감상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 또한 발견하게 된다. 전시장에서 나오면 한켠에 작가 인터뷰 영상이 있어서 작업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다.

섹션 6 '검은 흙' 전경 일부


메리 코스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그렇기에 그 강렬함에 이끌려 작품 위에 지는 그림자, 관객이 움직일 때 생기는 빛 반사, 붓질의 방향, 캔버스의 형태까지 작품을 구석구석 뜯어보게 된다. 만약 작품 수가 많았다면 이들을 하나하나 살피는데 무척 피로하고 서로가 방해되었을 텐데, 널찍하게 놓인 작품들이 감상을 편하게 해 주었다. APMA에 올 때마다 조명과 작품 배치가 참 좋다고 느끼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 점을 특히 잘 느낄 수 있었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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