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의 UX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바바라 크루거: Forever》

by Haim Jung

전시기간: 19.06.27-19.12.29

관람일: 19.10.24



전시를 볼 때는 상당한 에너지가 쓰인다. 서서 돌아다니는 채로, 글을 읽고, 작품을 감상하고, 그것들을 이해하며, 기록을 남긴다. 이러한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전시를 다 볼 때쯤에는 녹초가 된다. 동선이나 관람 시간도 피로도에 영향을 주지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동은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 받아들이고 그것을 소화하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데, 전시를 볼 때는 새로운 정보를 쉼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고 스스로 관람 속도를 조절하는 관객도 있지만, 관객 대부분은 전시를 보는 것이 체화되지 않았기에 이들에게 완급 조절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신 이들이 자연스럽게 완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애초에 정보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전시 디자이너의 역할이다.


《바바라 크루거: Forever》에서 미술관은 관객이 최상의 상태에서 전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우선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라커룸과 화장실의 위치, 그리고 오디오 가이드의 사용법을 안내받는다. 오디오 가이드는 티켓만 있으면 누구나 앱을 다운로드하여 이용할 수 있어 추가로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탁 트인 층고와 광활한 넓이가 기분을 환기해준다. 전시장이 지하에 있고 창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답답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넓은 평지가 펼쳐져 있으니 무작정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작품들은 최소 두세 걸음씩 떨어져 있고, 필요에 따라 한 전시실에 한 작품만이 놓여있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같은 면적의 전시장에 설치되는 작품의 수가 일반적인 전시에 비해 현저히 적어진다. 그래서 전시장 전체적으로 작품이 꽉 차지 않고 여유롭게 놓여있는 느낌이다. 관객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작품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주변의 여유 공간 덕분에 작품의 여운 또한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작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캡션 또한 어려운 어휘 없이 쉽게 읽힌다. 현대미술을 감상하는데 장벽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인데,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작품마다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표기해두었다. 전시를 관람하고 나면, 다양한 부대시설이 관객을 맞이한다. 지상층에 아트샵이 있고 미술관 문을 열고 로비로 나오면 쉬어갈 수 있는 의자와 카페, 그리고 도서관 등 다양한 성격의 부대시설이 있다. 특히 도서관에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진행한 전시의 도록을 전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전시를 본 관객이 자신의 흥미를 바탕으로 자료를 찾아보기에 적합하다. 이렇게 미술관과 부대시설들은 비전공자와 전공자 모두에게 매력적인 공간이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은 관객이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전시를 보고 난 이후까지 건물을 이용하는 순간 모두를 디자인했다. 이러한 전시 UX(User Experience) 디자인은 관객이 관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고,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디자인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 이번 전시를 통해 깨닫는다.

전시 전경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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