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 작품을 닮은 건축

리움미술관 《고미술 상설전》

by Haim Jung

전시 기간: 21.10.08-

관람일: 21.10.09



리움은 내게 특별한 곳이다. 대학생 때 수업 과제를 위해 2017년 봄에 처음 방문했는데, 과제를 잘하려고 열심히 전시를 보다 보니 전시를 보는 눈이 조금이나마 트여서 그때 익힌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재개관 소식을 듣자마자 예약 시간을 체크해서 다녀왔다. 4년 만에 방문한 리움은 전시뿐만 아니라 MI(Museum Identity)와 내부 시설도 리뉴얼되어 있었다. 총 3개의 전시 중 M1에서 열리는 고미술 상설전은 미술품을 형식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었는데, 4층에서부터 내려오면서 청자-백자-서화-불교미술 작품 순으로 관람하는 동선이었다.



3개 건축물이 연결된 리움의 건축 중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M1은 원형으로 되어 있으면서 건물 중앙 로비를 통해 다른 두 건물을 연결한다. 고미술 전시는 이 건축의 특성과 굉장히 잘 어울린다. 우선 테라코타 벽돌로 마감한 건물은 그 자체로 고미술품을 닮았는데, 한국 작품이 가장 많은 고미술 전시관이 나머지 두 건물을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상징적이다.

또한 전시가 건물의 원형 형태를 따라 곡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전체 공간이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관람자는 벽을 따라 곡선으로 천천히 돌며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해 관람하게 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트여 있는 직선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보아야 하는 곡선은 오랜 세월을 담고 있는 한국 고미술품과 잘 어울린다.

곡선형 동선

마지막으로, 층을 이동할 때 내려가게 되는 원형 계단은 갈색톤의 어두운 전시장과 대비되는 밝은 화이트톤의 중정으로 되어 있어 다음 전시실로 넘어갈 때 확실하게 정신을 환기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고미술품 전시인 데다가 전시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탓에 다른 전시에 비해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데, M1의 계단은 전시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조성되어서 공간이 전환될 때 서로에게 극적인 효과를 준다.

밝은 화이트톤의 로툰다


전시는 건축의 특성을 잘 활용한 것뿐만 아니라 전시실 내에서도 공간에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무거운 작품은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좌대에, 가벼운 작품은 천장에서부터 내려오는 좌대에 전시하는 등 같은 종류의 작품도 다른 방식으로 놓는다든지, 고미술품과 어울리는 현대미술품을 중간중간 배치한다든지 하는 변화를 통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지루함을 상쇄하는 요소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러한 요소 중 몇 가지 기억 남는 장면들을 소개해보자면, 고려청자가 전시되는 4층의 `푸른빛 문양 한 점`의 입구 근처에는 찻잔만 모아 전시한 방이 있었다. 찻잔이 워낙 작다 보니 다른 자기와 섞여 있을 때 존재감이 덜할 수 있었을 텐데, 공간을 구분해 찻잔끼리 모아놓으니 서로 비교하기도 좋고 고려인들이 차 문화를 즐겼다는 점이 강조되기도 해 전시 초반에 해당 층에 대한 분위기를 잡아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찻잔이 모여있는 방

또한, 전시 중간중간 청자와 함께 청자의 옥빛을 닮은 현대 회화를, 조선백자와 함께 백자 표면의 결을 닮은 현대 회화를, 그리고 불교 미술품과 함께 불교 사원을 닮은 조각품을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배치한 점이 몇 년 만에 다시 봐도 새로웠다. 몇백 년의 시간차를 둔 작품들이 공존하는 공간에 머물면서 내가 그 시간 사이에 들어간 것 같아 작품의 감동을 배로 느낄 수 있었다.

청자의 옥빛을 닮은 바이런 김의 회화
백자 표면의 결을 닮은 회화

4층에서부터 1층까지 전시를 다 보고 나면 마지막으로 로비로 내려가는 계단에 태양계를 표현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시간을 초월하는 고미술품의 존재를 곱씹게 하면서도, 다음으로 이어지는 현대미술품 전시를 암시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M1의 건축이 하는 역할을 작품 중에서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것이 해내고 있는 것이다.

태양계를 표현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고미술 상설전은 건축에서부터 시작해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으로 이어지면서 나머지 공간들과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전시를 다 보고 로비로 나와서는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현대미술 상설전이 열리는 M2로 향했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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