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는 어떤 작품을 다루느냐에 따라 적합한 전시 방식이 모두 다르다. 뜻을 파악하기 힘든 현대미술, 모르는 언어로 된 유물 등 작품마다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측면에서 작품에 좀 더 적합한 방식을 고려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광장: 미술과 사회 1900-2019》는 1900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적 순간들이 한국 사회와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전시이다. 그중 덕수궁관에서 진행했던 1부는 1900~1950년 시기를 다루었다. 3개 관에서 이루어지는 전시 중 시대적으로 가장 앞쪽에 있어서 미술관보다는 박물관 전시의 성격에 가까웠다. 전시품들은 주로 동양화, 잡지, 책 등 한자와 옛 한글이 적혀 있었기 때문에 그 뜻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전시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전시는 기존의 익숙한 방식을 따르면서 이 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1 전시실 ‘의로운 이들의 기록’에서는 위정척사파의 초상과 그들의 지조를 나타내는 사군자 작품이 전시되었다. 동양화의 특성상 대부분의 작품에 '제발'이라 불리는 한문 글 이 적혀있었는데, 작품의 기본 정보가 담긴 캡션 아래에 제발을 뜻풀이한 캡션이 추가로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서서 고개 숙여 읽기에는 다소 긴 분량이었고, 무엇보다도 한글로만 적혀있었다. 덕수궁관에는 위치 특성상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곤 하는데, 한글을 읽을 수 없는 그들 입장에서는 작품에 관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목 캡션뿐이었을 것이다. 문인 사상을 바탕으로 발전해온 조선의 미술에서 글을 이해하지 못하면 작품을 진정으로 감상한다고 할 수 없기에, 이 점을 배려하지 않은 점이 무척 아쉽다. 캡션보다는 뜻풀이용 리플렛을 제작해 관객이 가지고 다니면서 읽을 수 있도록 했다면 앞선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작품 캡션과 그 아래의 뜻풀이용 캡션
또한 1, 2, 3 전시실 모두 벽에 붙은 인용문이 작품보다 존재감이 커서 주객전도되어 보였다. 전시에서 벽에 쓰인 폰트는 크게 바탕체와 돋움체로 나뉜다. 바탕체는 캡션에 쓰였고 돋움체는 벽 자체에 붙여졌는데, 돋움체는 작품의 크기가 너무 작아 그것이 가진 의미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 경우, 작품으로 채우지 못한 벽이 있는 경우, 그리고 작품의 크기가 아주 커서 바탕체가 그 내용을 담아내기 약했던 경우에 쓰였다. 돋움체의 폰트는 산돌구름의 ‘청류’가 쓰였는데, 획이 두꺼워 지면에 꽉 차는 느낌이 들고 날카롭고 힘 있게 뻗쳐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청류체는 역사적으로 힘든 시기를 버텨낸 조선 민중과 양반의 의지를 잘 담아낼 수 있었지만, 글자의 개성이 너무 강해 작품에 먼저 눈이 가지 않고 시선을 가로채고 말았다. 덕수궁관은 인공조명만으로 조도를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그래픽보다는 조명과 좌대를 활용해 전시의 완급을 조절하고 앞서 언급한 작품 해설 리플렛을 더해서 작품 자체의 모습에 집중하도록 했다면 작품이 좀 더 주인공처럼 보였을 것 같다.
작품과 그에 관한 인용문
이번 전시는 작품의 형태적 단순함과 작품 해석의 난제를 그래픽으로 해결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전시장에 들어섰을 때 작품보다 그래픽에 집중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최근 시각 매체가 우리 삶에서 점점 더 큰 범위를 차지하면서 공간 디자인에서도 시각 매체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사람들이 실제의 경험을 위해 일부러 전시장에 찾아오는 만큼, 2차원과 3차원 공간을 넘나드는 다양한 감각들이 모여 작품에 딱 맞는 담음새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