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끌어안는 거대한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안드레아스 거스키》
by Haim Jung Apr 21. 2022
전시 기간: 2022.03.31-2022.08.14
관람일: 2022.03.31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하는 전시는 대부분 좋아하는 편이다. 작품도 좋지만, 무엇보다 정돈된 전시 공간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곳을 작품으로 가득 채우지 않고 여백을 남겨 관객이 작품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5번째로 같은 공간에 방문하다 보니 이제 작품 장르에 따른 통상적인 배치 방식이 어느 정도 눈에 익었다. 그래서 예전보다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새로움이 덜 느껴지지만, 여전히 좋은 공간임에는 변함이 없다.
[작품의 주제와 표현 방식]
이곳의 넓은 폭과 높은 천정,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과 일정한 규격으로 마감된 콘크리트 패널은 빈 공간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하고 밀도 있게 짜인 느낌을 준다. 문명의 힘을 보여주는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거대한 사진들은 이 공간의 기운을 압도하며 사람들의 걸음을 이끈다. 그는 사람보다 큰 스케일의 사진을 만든다. 보통 신체와 비슷하거나 더 작은 크기의 그림은 작품을 바로 앞에서 보나 몇 걸음 뒤에서 보나 감상에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사람 스케일보다 큰 거스키의 작품은 전체 모습을 한눈에 감상하려면 족히 아홉 걸음, 어림잡아 환산하면 3~4m는 뒤로 가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의 사진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사람'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람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뒤로 갔던 만큼 다시 작품 바로 앞까지 걸어가서 작품을 뜯어보아야 사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직접 몸을 움직여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은, 마치 사진에 찍힌 거대한 공간을 그대로 축소한 스케일 모형 같다.
그 예로 〈파리, 몽파르나스〉는 어림잡아 가로 3.5~4m, 세로 2.3m 정도 되는 작품이다. 전시장에서 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우선 작품으로부터 3~4m 떨어져 전체 모습을 본 다음, 작품의 왼쪽 끝 바로 앞으로 가서 반대편 끝까지 걸으며 작품의 디테일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또 다른 그의 작품 〈아마존〉은 아마존 물류센터의 모습을 찍은 것인데, 이 작품은 사진에 찍힌 상품들의 크기가 실제 상품 크기와 비슷할 정도의 규모를 가져 작품 앞에 서면 실제 물류센터 안에 들어간 듯 한 기분이 든다. 이렇듯 거스키의 작품은 최대한 현장에서 감상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는 '거대한 문명 아래의 인간'이라는 전반적인 작품 주제를 실제 스케일로 표현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우리 몸이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 감상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마존〉
[거리에 따라 달라 보이는 사진들]
'거리'를 중심으로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거리에 따라 주제가 흥미롭게 표현된 사진들이 많이 보인다. 이들 중 인상적이었던 몇 점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홍콩 상하이은행 III〉에서 거대한 건물의 전광판에는 사회의 주요 이슈들이 흘러가고 있다. 전광판 양 옆의 잘 보이지 않는 건물 내부를 가까이서 살펴보면, 희미하게 보이는 사무실 안에서 회사원들이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 명암대비를 통해 거대한 사회 흐름 속 미미한 인간의 존재가 강조되고 있다.
〈무제 XIX〉에서 수백만 송이의 튤립 들판은 멀리서 보면 마치 색면 추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았을 때 튤립은 여전히 튤립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실제적인 사진과 추상적인 추상화의 상반되는 개념이 작품을 감상하는 거리에 의해 강조되는 작품이다.
〈뮐하임 안 데어 루르, 낚시꾼〉은 멀리서 보면 평화로운 강의 모습을 담은 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을 가까이서 보면 오른쪽 아래에는 낚시꾼들이, 왼쪽 위에는 자동차 도로가 있다. 왠지 자동차 소리가 낚시꾼들의 조용한 일상을 방해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리에 따라 담고 있는 이야기가 다른 사진이다.
〈얼음 위를 걷는 사람〉은 전시 마지막에 위치한 작품이다. 2021년에 찍은 것으로, 작품 속 사람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서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작품을 감상하는 거리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번 전시에서 거리에 관한 사진을 마지막 전시실에 놓은 배치가 좋았다. 거스키의 주제 의식을 통해 이 작품을 보니 작은 한 명 한 명 사람들의 존재가 더욱 소중해 보인다.
우리 몸보다 조금 더 큰 이 사진들을 보는데도 우리는 앞뒤, 양옆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열심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 작품 하나를 감상하는데도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만큼 한 명의 인간은 약하다. 반면에 작품에 담긴 엄청난 스케일의 공간들과 그 공간을 터트릴 듯이 채우고 있는 자본주의의 생산물들을 보고 있으면, 한 인간은 정말 작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며 저절로 겸손해진다. 홀로 지내며 사유의 시간이 늘어난 이 시기에, 빠르고 거대한 사회 속 개인의 존재에 관해 고민해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