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주제로 한 서울시립미술관의 마지막 전시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다. 먼저 감상한 《시적 소장품》은 시의 요소를 미술에 대입해 소개했고, 《청금루 주인 성찬경》은 시의 미술적 확장성을 다루었다. 마지막 전시는 미술로 시를 감상하는 전시로서, 한 편의 시가 미술가의 일생을 담고 있어 작품과 공간으로 시를 감상하게 된다.앞의 두 전시가 시로 미술을 감상하는 것과 반대됨으로서 시를 미술의 한 장르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조각가 권진규가 조선일보에 기고한 시 「예술적 산보-노실의 천사를 작업하며 읊는 봄, 봄」에는 그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 작업 방식과 대상, 미래에 대한 희망 등 그의 삶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가 전시의 모태가 되어 전시 제목 역시 시의 일부를 인용했는데, '노실'은 그의 작업장이었던 아틀리에를 뜻한다. 전시장에도 작품, 작업 공간, 작업 방식, 제작 과정 등 그의 작품 세계가 일생에 따라 전개되고 있다.
전시의 모태이자 시작을 알리는 권진규 작가의 시
공간은 수도승 같은 생활을 보냈던 그의 아틀리에로부터 영감을 얻어 구성되었다. 공간의 중심에는 아틀리에에 있던 우물과 가마를 형상화한 좌대가 있고,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종류의 조각상들이 종류별로 소개된다. 전시장 뒤편에는 그의 주된 작품 기법인 테라코타와 건칠의 제작 방법이 있고, 이러한 작품관을 형성하기 위해 참고했던 많은 서적들과 드로잉들도 놓여 있다.
공간 디자인에 주로 사용된 개념은 '앞과 뒤', '내부와 외부', 그리고 '벽돌'이다. 우선 전시 초반에는 말의 머리인 '마두상' 여러 점이 있다. 이들은 관객이 어떤 위치에서 보더라도 좌, 우, 앞면을 모두 볼 수 있도록 각기 다른 방향으로 놓여 있다. 이는 사면에서 본 모습이 모두 다르다는 마두의 특징을 잘 살린 배치이다. 그 옆에 놓인 사람 조각 역시 모든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원형 좌대에 놓여 있다.
다른 방향으로 놓인 마두상들
전시장의 중앙은 동물 조각들이 놓인 우물형 좌대와 여성 흉상이 놓인 가마형 좌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양옆으로 벽에 거는 부조 작품과 여성상이 전시되어 있다. 먼저, 우물형 좌대는 시선이 낮고 원형으로 되어 있어서 움직임이 다채롭고 크기가 작은 동물 조각들을 360도에서 모두 감상할 수 있다. 관객은 먼저 원의 바깥면을 돌면서 동물의 정면을 감상한다. 이후 원의 중간에 뚫린 길을 따라 내부로 들어와 안쪽면에서 동물의 뒷면을 보며 조각의 전체 모습을 감상하게 된다. 반면, 가마형 좌대는 시선이 높고 사각형으로 되어 있어서 자세가 정적이고 크기가 큰 여성 흉상을 정면과 측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우물형 좌대와 마찬가지로 관객은 사각 벽의 바깥면을 돌며 여성 흉상을 보고, 벽의 한 면에 뚫린 내부 공간으로 들어와 주요 작품을 좀 더 닫히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감상할 수 있다.
우물형 좌대
가마형 좌대의 바깥면(좌), 안쪽면(우)
이렇듯 다른 종류의 좌대와 벽에 작품을 배치하는 진열 방식은 작품 장르를 구분할 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면에 따라 환조, 부조 등으로 나뉘는 조각의 특성까지 반영하고 있어 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모두 훌륭한 배치였다. 또한 전시장 중앙에 전시물의 주인공인 조각들을 전시했다면, 전시장 뒤편에 해당하는 가벽 뒤에는 작품 제작 과정, 권진규 작가가 세계관을 발전시키는데 참고했던 다양한 자료들과 구상 드로잉이 전시되어 있어서 관객이 긴 시간 집중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테라코타 제작 과정(좌), 드로잉 및 서적 아카이브(우)
형태와 더불어 좌대들은 일반적인 그것처럼 MDF나 철제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돌이라 할 수 있는 콘크리트 벽돌로 쌓아 만들었다. 이는 돌을 쌓아 만드는 우물과 가마의 건축적 특징을 전시장에서 간편하게 구현한 좋은 아이디어이다. 특히 벽돌은 권진규의 조각처럼 각 면의 형태가 다른데, 이를 활용해 좌대마다 벽돌의 다른 면을 노출시켜서 공간의 통일감을 유지하면서도 율동감을 주어 무척 인상 깊게 보았다. 수백 개의 벽돌로 만들어진 좌대는 건물처럼 보이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러한 점이 동선을 딱딱하게 만든 것은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240여 점이나 되는 작품들을 한 공간에 전시하기 위해서는 기하 도형의 효율성이 필수 불가결하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감상에 크게 영향을 주는 부분은 아니었다.
다양한 형태로 쌓인 벽돌들
전시를 보기 전에는 시의 단어들을 통해서만 작가의 삶을 막연히 상상했다면, 전시를 감상한 후에는 시의 단어들을 읽는 순간순간마다 그의 작품이 떠오르면서 고독한 조각가였던 권진규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이렇듯 이번 전시는 한 편의 시를 글과 공간, 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다. 미술을 품고 있는 시를 감상하면서, 우리는 시와 미술이 하나의 장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3주간 시(詩)를 중심으로 한 3편의 시를 감상했다. 시와 미술의 요소들이 비슷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시가 미술로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마지막으로 시와 미술이 한 장르라는 점을 전시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시는 그것을 음미하는 동안 우리가 언어의 리듬 자체를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언어의 의미를 통해 우리의 상상을 끌어낸다. 초마다 달라지는 세상의 빠른 변화로부터 잠시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 지금 시기에 시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위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