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에 이은 '시(詩)'를 주제로 한 두 번째 전시는 《청금루 주인 성찬경》이다. 먼저 관람한 《시적 소장품》은 시의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을 미술에 대입한 전시였다. 이번 성찬경 회고전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시의 미술적 확장성을 살피며 시와 미술의 관계에 관한 감상 폭을 넓힐 수 있다. 성찬경은 시를 쓰고, 시로 공연도 하고, 작품도 제작한 종합 언어 예술가였다. 8개 전시실은 크게 '성찬경의 공간과 시론-시 퍼포먼스-생명을 얻은 오브제-영감을 준 스승'의 주제를 담고 있다.
[성찬경의 공간, 미술관의 공간]
가장 먼저 섹션 1 '청금루: 작가의 서재'는 성찬경의 서재를 재현한 공간이다. '청금루(清襟樓)'는 '학문과 문학에 뜻이 있는 젊은이인 문청(文靑)이 모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전시를 끝까지 관람한 후 남서울미술관에서 성찬경의 회고전을 개최한 것이 정말 적절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구 벨기에 영사관이었던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데, 이곳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된 작고 고풍스러운 건축물이다. 유럽은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방 하나가 전시장의 한 구역이 된다. 그래서 이런 곳에서 열리는 전시를 볼 때면 누군가 살았던 곳에 방문했다는 생각에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남서울미술관도 그런 기분이 드는 곳이었는데, 공간 스케일이 유럽의 궁전들에 비해 훨씬 가정집과 비슷해서 정말로 성찬경이라는 사람의 집에 초대된 듯 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햇살이 좋은 오전, 낮에 방문해 작품에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포근함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남서울미술관 전경
청금루 글자가 새겨진 현판을 지나 서재로 들어가면 중앙에 작가가 사용했던 책상과 책장, 그리고 여러 소품들이 있다. 그중 책상 위에 놓인 철제 독서대에는 '발분망식(發憤忘食) 낙이망우(樂以忘憂)'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이는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먹는 것도 잊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근심조차 잃어버리는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작가가 예술 행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껴지는 문구다. 서재 옆쪽 방에서는 시에 관한 작가의 여러 이론들을 볼 수 있다. 그 이론들은 시의 의미를 한 단어로 압축하는 '밀핵시'와 '절대시', 사회적 환경문제를 비판하는 '생태시', 생명체가 아닌 물건들도 독립된 권리를 가진다는 '물권시' 등이다. 공간은 성찬경이 쓴 시집을 가운데에 배열하고, 각 시론을 대표하는 시가 천장억 매달려 있어 전시 내용을 구분 짓는다. 시에 묘사적 언어를 많이 사용하고 물건들도 하나의 생명으로 대하는 그의 작품 성향은 시를 글뿐만 아니라 그림, 오브제와 함께 표현함으로써 독자의 감상 폭을 확장시킨다.
청금루 현판
청금루 재현 공간(좌), 발분망식 낙이망우가 새겨진 독서대(우)
시론을 소개하는 공간
[퍼포먼스와 오브제로 확장되는 시]
섹션 2 '야오씨와의 대화: 말+예술'은 성찬경이 일반적인 시 낭송회를 넘어 퍼포먼스로 승화한 '말예술'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성찬경이 진행한 말예술 퍼포먼스의 초대장, 리플렛, 현장 사진 및 소품이 아카이브 되어 있다. 특히 작가가 직접 그린 초대장은 매번 다른 디자인으로 그려져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말예술 아카이브
2층으로 올라오면 '유쾌하게 빌었다: 물질과 물권', '오오로라: 세상의 운율, 그림자 버스, 행복한 가정' 섹션에서 작가가 제작한 오브제들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성찬경은 자신의 집을 '물질고아원'이라 명명하고 간판까지 만들었는데, 버려진 물건들을 조합해 새로운 오브제로 만듦으로써 버려진 물질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나무 테이블을 닮은 좌대는 작품이 정말 성찬경의 작업대 위에 올라가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 또한 2층의 크고 작은 방들, 나무 바닥, 샹들리에, 그리고 공간 곳곳에 있는 창문과 난로 등 구 벨기에 영사관의 흔적들은 전시장을 더욱 집처럼 느끼도록 하는 요소들이다.
물질고아원 간판(좌)과 새 생명을 얻은 오브제(우)
집을 닮은 전시 공간
전시의 마지막 섹션 '답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 성찬경의 송(頌)'에는 성찬경이 영감을 받은 문학, 음악,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을 오마주한 시와 오브제들이 전시되어 있다. 방 안에는 직육면체의 좌대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고, 그 위에 작품이 놓여 있다. 이곳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기둥처럼 세워진 좌대들과 단단한 창문으로부터 들어오는 빛이 신성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스승을 존경하는 성찬경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밝고 따사로운 햇살은 전시장의 공기를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따뜻하게 채우는 듯했다.
'답을 가르쳐 주시는 스승: 성찬경의 송(頌)' 전경
이처럼 《청금루 주인 성찬경》은 건물-내부 공간-집기 디자인까지 성찬경의 집을 거니는 듯 한 경험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시의 개념이 미술로 확장되는 과정을 감상하며 예술의 감상 폭을 넓힌다. 관객의 감상력을 키울 뿐만 아니라 주제와 공간 구성이 한 몸으로 어우러진 좋은 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