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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Mar 31. 2022

[41-1] 시와 미술의 관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시적 소장품》

전시 기간: 2022.03.22-2022.05.08

관람일: 2022.03.29




작년 말부터 시작된 전시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올해를 여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키워드는 '시(詩)'인 것 같다. 이번 주 리뷰할 전시를 보려고 여기저기 검색하던 중 서소문본관의 두 기획전시인 《시적 소장품》과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 그리고 남서울미술관의 《청금루 주인 성찬경》 모두 시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세 전시 모두 22일~24일에 오픈해서 5월 중에 끝난다. 세 전시를 모두 방문했는데, 시의 속성을 통해 미술을 감상하는 정도가 깊어지는 순서로 글을 써보려 한다. 먼저 이번 주에는 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다루는 《시적 소장품》부터 시작해서 다음 주에는 시 예술가인 성찬경의 회고전 《청금루 주인 성찬경》, 다다음주에는 시를 쓴 미술가인 권진규의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에 관한 후기를 차례로 다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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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소장품》은 시의 속성을 미술의 속성에 빗대어 설명함으로써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발전해온 두 장르의 공통점을 보도록 하는 전시다. 가장 먼저 시에는 말하는 사람인 '화자'가 있다. 섹션 1 '말하는 사람'은 시에서 그러하듯 작가가 직접 화자가 되거나 작가가 만든 다른 화자가 등장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시는 시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고백적인 성격을 띠는데, 섹션 2 '고백(록)'은 그러한 성격을 가진 작품들로 구성된다. 섹션 1과 2는 둘 다 화자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섹션 1이 거시적인 사회적 메시지나 현상을 담고 있는 반면 섹션 2는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마지막으로 섹션 3 '시와 미술'은 시인이 언어의 다양한 특징을 자기의 개성으로 활용하듯이 작가가 다양한 재료와 기술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작품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시 요소 안에서 작품을 해석해야 하는 복잡한 작업을 해야 하다 보니, 전시 공간은 부가적인 설치물 없이 작품으로만 채워져 있다. 전시의 기획 의도와 잘 맞는 몇 가지 작품을 통해 시와 미술의 속성을 되새길 수 있었다.


섹션 2 '고백록'에 있는 Goodbye to Love 1은 중고 사이트에서 헤어진 연인이 선물했던 종이학 1000마리를 6000원에 구입하면서 시작된 작품이다. 작품은 황금색 종이학이었던 학종이를 모두 펼쳐서 큰 캔버스 비율로 이어 붙이고, 그 옆에 펼치기 전의 원래 종이학 한 마리가 놓여 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사랑이라는 소재가 섹션 제목의 '고백'과도 의미상 연결되고, 학을 판매한 사람과 작가의 '고백'이라는 경험이 중첩되어 탄생 것으 섹션 2의 첫 부분을 장식하기 적합다.

〈Goodbye to Love 1〉

     섹션 2다른 작품인 애절한 사랑의 대 서사시를 쓸 수 있게끔 고안된 거대한 원고지는 작가가 첫사랑에 대한 회고록을 작성한 후 그 글자 수에 맞춰 제작한 원고지다. 원고지는 꼭 파도가 일렁이는 형태로 제작되어 칸마다 크기가 제각각이다. 이 모습이 꼭 사랑이라는 감정의 복잡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원고지의 칸이라는 언어적인 체계를 미술 작품으로 활용했다는 점 역시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가 작품화된 모습처럼 느껴져 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애절한 사랑의 대 서사시를 쓸 수 있게끔 고안된 거대한 원고지〉

     마지막으로, 섹션 3에서는 지시대명사를 활용한 〈장소의 논리〉라는 작품이 기억에 남는다. 작품은 땅에 원을 그려놓고 작가가 원의 안, 밖, 원의 경계 등에서 원 내부를 다르게 지칭하는 모습을 담은 퍼포먼스이다. 작가의 위치에 따라 같은 대상이 다르게 불리는 언어의 속성을 재료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와 연관성이 깊었다.

〈장소의 논리〉

     다른 인상적인 작품들도 많았지만, 이번 리뷰 시리즈가 시를 중심으로 전시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언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작품 위주로 기록을 남겼다. 시적 소장품》에는 시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지만 다음번에 다룰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와 《청금루 주인 성찬경》은 전시에 시가 직접 등장한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언어와 관련된 작품들을 감상하며 시와 미술의 관계에 적응한 후 나머지 두 전시를 본다면, 전시장에서 시를 음미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전시장의 크기에 비해 작품 수와 배치는 다소 빈약해 보이고, 공간에 쓰인 초록색과 분홍색의 메인 컬러 역시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파악하기 힘들어 전시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다고 느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시와 미술이라는 다른 장르를 같게 보게 하면서도 그 깊이가 누구든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정도의 깊이를 가진 것 같아서 기획의 측면에서는 좋은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전시 서문에는 "시는 우리의 자동화된 관습적 사고에 제동을 거는 새로운 인식과 대상을 낯설게 하는 방법론에서 시작된다. 시가 지닌 예술적 특징들은 자주 미술과 비견되었고 미술가들에게 무수한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다는 점이 이 전시를 출발하게 했다."라는 문구가 있다. 시인과 미술가들이 서로의 작품을 보며 발전해왔듯이, 전시를 보는 관객들 역시 이들의 관계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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