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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May 12. 2022

투명한 차가움, 흐릿한 따뜻함

OCI 미술관 《김을파손죄》

전시 기간: 2022.04.07~2022.06.04

관람일: 2022.05.04




예술 속 의미를 파괴하는 작가, 김을 개인전에 다녀왔다. 이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히토 슈타이얼의 개인전도 함께 보았는데, 두 작가의 성향이 워낙에 달라서 각각의 스타일을 비교하며 보게 되었다. 히토 슈타이얼은 투명하고 차가웠으며, 김을은 흐릿하고 따뜻했다.


먼저 히토 슈타이얼은 수렴하는 예술가다. 책과 논문을 여러 권 출간하며 꾸준히 연구활동을 하고 있고, 교수로도 재직 중이다. 이러한 공부와 함께 작품을 제작하다 보니, 그녀의 미디어아트를 이해하려면 보는 사람 역시 많은 사회적 이슈들과 메타포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토 슈타이얼의 을 보면서는 한국 관객들이 서구권 사람인 그녀의 작업을 낱낱이 이해하기는 힘들 것 같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김을은 발산하는 예술가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말하고 있듯이 아무 의미도 포장도 없는 드로잉이라는 행위 자체에집중한다. 그저 표현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그 외의 의도도 형식도,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유분방한 형식의 드로잉들이 넘실거리는 전시장

     그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는 드로잉이 완성된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지는 통념을 뒤집는다. 렇다고 과정을 결과라고 규정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 자체를 부정한다. 드로잉을 결과도 과정도 아닌 그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김을은 여전히 '육체의 감각' 가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들어 예술의 주 흐름개인 자체를 표출하는 것보다는 연구와 공부를 통해 생각을 표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  김을의 작품은 전자에 해당한다. 그도 그만의 고민이 당연히 있겠지만, 정량적인 연구와 분석이 없다는 점에 후자와 다르다. 정량적인 것들은 모든 것이 증명되는 반면, 그것이 불가능한 김을은 흐릿하다.

손으로 그리고 만든 흔적들이 보이는 작품들

     이는 곧 그의 작업 과거지향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좋지 않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이렇게 육체의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그만의 가치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술과 밀착되어 모든 것이 명확하고 추적 가능한, 투명한 사회를 모두가 반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미술작품들에는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크레딧이 낱낱이 적혀 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그것들을 파헤쳐 작품의 근원까지 파고들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증명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이 아 적당히 가려져 서로 간의 여유 있는 관계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김을의 작품이 반갑게 느껴질 것다.

욕과 눈물, 망치. 직설적이고 육체의 생생함이 느껴진다. 이런 과감한 표현들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전시장에는 자유분방하게 표현된 그의 흔적들이 전시된다.  조각, 드로잉 속 김을 자신의 모습과 드로잉에 관한 편견을 깨는 망치 기계가 눈에 띈다. 무슨 전시인지 알리는 서문을 제외하고는 전시장 그 어디에도 글이 보이지 않는 것도 김을 같다. 공간 구성 역시 흐름을 가지고 엮기보다는 그저 비슷해 보이는 것들끼리 놓아두었다. 김을을 닮은 꾸밈없는 공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세상의 흐름과 다른 몸과 행위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따스한 위로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15.01.01부터 15.10.15까지 매일 1장씩 그린 드로잉들
전시의 마지막 작품은 17년도에 그린 김을 본인의 자화상. 전시장 중앙에 있는 조명의 위치가 절묘해서 자화상을 비추고 있는 듯 하다.




전시 공식 사이트

참고 도서: 한병철, 『투명사회』,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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