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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Mar 24. 2022

사람들이 자기만의 루틴을 찾으려는 이유

국립민속박물관 상설전시실 《한국인의 하루, 일 년, 일생》

전시 기간: 상시

관람일: 2022.03.23



재작년 즈음부터 SNS에서 루틴이라는 단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단어의 사용 범위도 무척 다양하다. 모닝 루틴ㆍ나이트 루틴 같은 시간대를 기준으로 한 것도 있고, 건강 루틴ㆍ공부 루틴 등 특정 목적을 기준으로 한 것도 있다. 원래 이 단어는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이 '최상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고유의 행동과 절차를 반복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꾸준히 유지하는 습관' 정도의 뜻으로 쓰이는 것 같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상설전시로 《한국인의 하루, 일 년, 일생》을 열고 있는데, 아침부터 저녁, 봄부터 겨울, 아기부터 노인까지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거치며 살아가는 루틴을 기준으로 섹션이 구분되어 있다. 전시를 통해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패턴화 할 수 있었던 예전 신분제 사회의 일상을 보니, 문득 최근 들어 우리가 루틴을 찾는 이유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루틴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분에 따른 역할이 주어져 있으니 내가 잘 살고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자기와 비슷한 신분의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면 되었을 것이다. 서로 비슷한 존재들끼리는 비교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한국은 신분제 사회는 아니지만, 농업 국가였던 과거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남아있어서 대다수 사람들이 비슷한 삶을 지향하고 있다. 좋은 대학-좋은 직장-좋은 결혼-좋은 자식농사의 일생 루틴 말이다. 모두가 같은 것을 추구하다 보니 서로가 비슷해지고 그러다 보니 서로가 비교하기 좋고, 그렇게 한국의 경쟁사회가 만들어진 것 같다. 이런 경쟁사회는 한국뿐만 아니라 비슷한 문화권인 중국, 일본, 홍콩 등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가 자기만의 꿈을 찾고 자기 자신에 집중한다는 말은 종종 들어왔지만, 진짜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기는 꽤 힘들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던 현상들이 물꼬를 튼 것 같다. 물리적인 연결이 끊기면서 비로소 사람들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에 다가가기 위해 조금 더 용기를 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인의 교과서적 일생 루틴 중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이 깨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대학 대신 공무원 시험을 택한  고등학생들이 부쩍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직장 역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다양해지면서 전통적인 출퇴근 방식의 삶이 전부가 아니게 됐다. 그동안 미미한 움직임으로만 짐작했던 변화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그다음 단계인 좋은 결혼과 좋은 자식농사는 아직까지는 경제적인 측면의 영향이 더 큰 것 같아서, 이 단계가 깨지는 것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가 각자 원하는 삶을 지향하다 보니, 문제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 판단할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너도 나도 사는 방식이 다르다 보니 자기 스스로가 기준을 만들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목표를 세워 루틴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며 목표에 다가가는 자신을 다독여주고, 존경하는 사람의 루틴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을 찾기 위해서.


사회적인 현상들은 그 시기를 가위로 자르듯 정확히 구분할 수는 없기에, 글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필자가 언급한 대로의 상관관계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많은 요인들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만 위의 현상들이 기억에 남아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 뿐이다. 보통 전시를 보고 나면 공간이나 기획에 관한 글을 많이 썼는데, 이번 글은 전시와 크게 상관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이 글도 전시 기획과 맞닿아 있다. 과거 한국인들의 일상을 재현한 전시를 보면서 현재 한국인들의 일상과 비교하며 이런 생각이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특정 시기나 작가를 다루는 기획 전시에 비해 상설 전시는 다루는 범위가 훨씬 넓어서 어떤 점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는데, 오히려 우리의 일상을 거시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재미난 생각이 불쑥 튀어나와서 기뻤다. 무엇이든 편식은 좋지 않듯이, 전시를 먹을 때에도 미술 반찬만 먹지 말고 역사 반찬과 과학 반찬 모두 고르게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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