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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m Jung Mar 17. 2022

빛과 색의 생태계

디 아트 스페이스 193  《살아있는 전망대, 2021》

전시기간: 2021.09.13-

관람일: 2022.03.07




올라퍼 엘리아슨은 늘 사람들이 직접 움직여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 그렇다 보니 그의 작품은 사람들이 전시를 감상하는 공간까지도 포용하는 것이 많다. 이번 전시는 대전신세계 엑스포타워 40층과 42층의 전망대에서 열리고 있는데, 전시를 구성하는 7개의 작품 모두 '전망대'라는 공간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전망대는 사전적 용어로 '멀리 내다볼 수 있도록 높이 만든 대'를 의미한다. 전시는 대전 시내의 풍경을 다양한 조각으로, 상하반전으로, 다른 색감으로, 때로는 그대로 내다볼 수 있는 제목 그대로의 '살아있는 전망대'이다.



전시는 우선 엑스포타워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0층까지 올라간 뒤, 전망대를 한 바퀴 구경하고 두 층을 더 올라가서 본격적으로 관람하는 순서다. '0. 숨쉬는 구름 행성'은 전시장으로 올라가기 전 사람들을 이끄는 이정표이다. 천장에 매달린 다면체의 투명 구는 올라퍼 엘리아슨 작업의 대표적인 이미지로서, 작가의 시각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숨쉬는 구름 행성' 바로 옆에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전시가 시작되는데, 사람들은 처음에 계단 밑에서 작품을 보다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서 점점 눈높이에 맞춰지는 구의 모습을 관찰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직접 움직이며 감상하는 올라퍼 엘리아슨 작품의 특징을 몸소 느끼게 된다.

0. 숨쉬는 구름 행성

     42층으로 올라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색감의 빛이다. 사각형의 전망대는 4개의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네 면은 각각 빛의 혼합의 기본색인 Red, Green, Blue, 그리고 이 색들이 모두 합쳐졌을 때 나오는 White의 4가지 색으로 구성된다. 사실 공식적인 설명에서는 색의 혼합의 기본색인 Cyan, Magenta, Yellow, blacK으로 구성된다고 나와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창문 색이 아무리 봐도 CMYK보다는 RGB에 더 가깝고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역시 빛을 연구하는 작업이다 보니 그의 작업에는 빛의 혼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창문의 색이 빛의 혼합인지 색의 혼합인지에 따라서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차이가 생기지는 않아서 좀 더 자율적으로 전시를 보았다.

의문의 Red(Magenta), Blue(Cyan), Green(Yellow) 창문 색


색에 대한 의문을 이쯤에서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감상해보면, 먼저 '1. 아침의 통로'는 Red(또는 Magenta)에 해당하는 붉은빛을 통해 풍경을 감상하는 작품이다. 터널 안쪽의 벽과 천장에 뚫린 삼각형의 구멍을 통해 바깥세상을 보면 기이한 SF 세계 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 삼각형의 구멍들은 모두 다른 구, 별 형태의 만화경으로 되어 있어서 우주의 각기 다른 행성을 보는 것 같다. 낮에는 빛이 있어서 창문의 붉은색과 함께 시내 풍경을 볼 수 있지만, 태양이 없는 밤에는 시내의 빛만이 왜곡되어 보일 테니 야경을 본다기보다는 은하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것만 같다.

1. 아침의 통로

     '2.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한 모형'은 오각형으로 구성된 돔 형태의 작품이다. 돔 외부의 표면은 주변 풍경을 거울처럼 반사하지만 돔 내부는 유리창처럼 주변 풍경을 왜곡 없이 통과시킨다. 바로 앞 작품이 내부에서 외부의 왜곡된 풍경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과는 반대되는 구성이다. 또한, 이 작품이 놓인 위치부터는 창문이 Blue(또는 Cyan)로 되어 있어서 작품 역시 푸른빛으로 풍경을 반사하거나 왜곡한다.

2.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한 모형

     '3. 회전하는 오각의 별'은 외부 풍경을 전망하는 2, 4의 작품을 연결하는 긴(것처럼 보이는) 터널이다. 작품은 정교하게 제작된 오각형의 터널로, 그것의 실제 길이보다 훨씬 더 길어 보이는 착시 효과를 나타낸다. 이 효과를 통해 터널 양끝에 놓인 두 작품의 차이를 공간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2가 투명 돔으로 그 내부에서 바깥 풍경을 왜곡 없이 볼 수 있는 것과 달리, 4는 불투명한 검은 돔으로 그 내부에서 바깥 풍경을 상하 반전된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비슷하면서도 반대되는 속성을 가진 두 작품의 차이가 가운데 놓인 오각의 별이 주는 거리만큼 다르게 느껴진다.

3. 회전하는 오각의 별

     '4. 현재를 보여주는 캐비닛'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어두운 돔 내부에서 외부 풍경을 관찰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구 내부로 들어가면 외부 풍경을 거꾸로 볼 수 있는 것뿐만 아니라 이 캐비닛에 있는 구멍을 통해서 바로 다음 작품인 '5. 하얀 선의 음모'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얀 선의 음모'는 들쭉날쭉한 직선 조명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직 어두운 캐비닛의 구멍을 통해서만 정 20면체의 완벽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4. 현재를 보여주는 캐비닛
5. 하얀 선의 음모

     마지막 '6. 사라지는 태양을 위한 캐비닛'은 앞 작품인 '하얀 선의 음모'와 같이 밖에서 보면 흩어진 면들의 조합처럼 보이지만 노란색의 구 내부에 들어가서 봐야지만 정교한 면의 완성된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또한 주변의 창문 색이 구의 노란색과 인접한 Green(또는 Yellow) 임에도 불구하고, 잔상효과로 인해 구 밖으로 나오면 잠시 동안 온 세상이 파랗게 보인다. 전시의 마지막을 '색'으로 물들이는 구성이 빛을 실험하는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세계를 나타내는 듯하다.

6. 사라지는 태양을 위한 캐비닛



7개의 작품은 공간과, 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스스로를 완성하는데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복잡하게 연결된 작품들의 관계가 전시의 '살아있다'는 표현을 더욱 와닿게 만들어준다. 전시장의 작품은 총 7개로 많지 않은 개수이지만, 감상자의 위치에 따라, 감상하는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몇 시간을 보아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만 평일에 방문해서 관객이 나뿐이었던 점은 조금 아쉽다. 시시각각 변하는 작품을 감상하며 즐거워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의 또 다른 재미이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방문해 '살아있는 전망대'에 생기를 더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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