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환경적 실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가면무도회》

by Haim Jung

전시 기간: 2022.04.13-2022.07.31

관람일: 2022.04.13




5개월 전에 '감각의 재미'라는 제목으로 전시 《놀이하는 사물》을 리뷰했었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던 전시로, 추상적인 형태의 구조물을 은박 비슷한 소재로 마감한 것이 인상적인 전시였었다. 당시 리뷰를 쓰면서 "전체적으로 집기들의 볼륨이 필요 이상으로 비대하다는 느낌은 있었다"는 문장을 적었었는데, 이번에 같은 공간에서 열린 전시 《가면무도회》에 다녀오면서 그 생각을 지우게 되었다.



[전시의 환경적 실천]

《가면무도회》의 전시 공간은 《놀이하는 사물》에 사용된 은박의 구조물을 재사용해 만들어졌다. 보통 관객들은 전시를 한 번 즐기는 것으로 그 전시에 대한 경험이 끝난다. 그렇기에 전시가 끝난 후 공간을 구성하는 구조물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이 적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구조물을 세우고 철거하고를 반복하는 전시 디자이너는 필환경 시대에 전시로 인해 발생하는 폐기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늘 고민하게 된다. 필자는 2021년에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열었던 건축 큐레이팅 워크숍 강의를 들었었는데, 이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 형식과 전시용 가구들을 따로 아카이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시의 주인공인 작가와 작품뿐만 아니라, 전시를 만드는 사람의 흔적과 그로 인해 생산되는 부산물의 흔적을 남기는 것 역시 더 나은 전시를 만들기 위한 유의미한 과정이라는 뜻이다.

전시의 환경적 실천에 관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전시장 입구에는 '환경을 고려해 이전 전시의 구조물을 재사용했다'는 안내 문구가 있다. 결국 비대하다고 생각했던 구조물의 볼륨은 오랜 시간 형태가 뒤틀리지 않고 유지하기 위함이었고, 구조물 바닥으로부터 삐죽 튀어나온 철판 발은 구조물의 위치를 쉽게 옮기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추론의 순서가 바뀐 것일 수도 있다. 구조물을 만들고 보니 한 전시에만 사용하고 버리기는 아까워 활용 방법을 찾은 것일 수도 있고, 처음부터 다음 전시를 고려하고 만든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낭비될뻔한 자원의 쓸모를 찾아 결국 환경적 실천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구조물 재사용에 관해 언급한 안내 문구
같은 구조물을 왼쪽의 《놀이하는 사물》에서는 캡션용으로, 오른쪽의 《가면무도회》에서는 작품용으로 사용했다.


[다르게 사용된 하나의 구조물]

이전 전시를 보아서 그런지 이번 전시를 감상할 때에는 같은 구조물을 두 전시에서 어떻게 다르게 활용했는지 비교하면서 보게 되었다. 먼저 작년에 감상했던 《놀이하는 사물》의 구조물은 작품을 지지하는 기능적인 역할과 동시에 '놀이하는 사물'이라는 전시 주제에 딱 맞는 비정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이 전시에서 구조물과 작품은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아주는 하나의 덩어리로 보였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놀이하는 사물들

반면 《가면무도회》의 구조물은 기능적 측면에서의 설득력이 조금 약해 보인다. 사되는 물체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비춘다는 점에서 은박 재질은 가면의 성격을 띠고 있어 주제적으로는 잘 맞아떨어지지만, 비정형적인 형태 벽과 좌대의 역할을 하기에 효율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구조물이 지지대로서의 역할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선의 형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구조물의 비정형적인 형태와 재질은 능적으로 작용하기 보다는 무도회장의 화려한 이미지를 주는 목적 위주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시장에 물리적인 덩어리들 외에 특정 색이나 그래픽을 사용하지 않은 이전 전시와 다르게, 빨간색의 포인트 컬러와 날카롭고 장식적인 폰트의 그래픽을 공간에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 역시 같은 목적을 위한 것이다.

《가면무도회》의 구조물

이렇게 두 전시를 보고 나니 전시의 환경적 실천은 분명 미래에 이로운 활동이지만, 지금 당장 마주한 상황만을 고려하면 자칫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전시들의 외형이 비슷해 보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아무래도 같은 구조물이 다양한 전시에 사용되기 시작하면 더 나은 것과 아닌 것을 비교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재사용된 구조물을 통해 다른 전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관객들에게 환경적 실천에 관해 확실하게 선언할 수 있지만, 반대로 디자인적으로 최선이 아니게 될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동전의 양면 사이의 중간면을 찾는 방법은 전시의 목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환경적 실천을 하는 것이 아닐까? 전시는 작품의 배치와 그들의 관계를 통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기에, 정신적인 가치가 물질적인 실천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시를 디자인할 때 디자인과 예산을 고려하면서 환경적 실천까지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디자이너 스스로 자신에 대한 제약을 늘리는 것이다.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고민하며 이러한 적정선을 지키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하고, 그 노력을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다.





전시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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