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전시에는 기획자의 의도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어느 정도는 감안하여 전시를 보는 것이 모범적인 관람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점수를 내는 것도 아닌데 모범적으로만 전시를 볼 필요는 없다. 게다가 기획자의 의도가축약된 전시라면 좀 더 자유롭게 작품을 감상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필자는 종종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단순히 '작품이 놓인 공간'을 통해 전시를 감상하곤 한다. 인간이 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층위가 있는데, 문학이나 음악처럼 지식과 경험이 많아야 느낄 수 있는 미가 있는 반면 보이는 것으로부터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미도 있다. 우리가 학생 때 미술 교과서에서 배웠던 대칭이나 리듬 등의 미의 원리 같은 시각적인 규칙들 말이다. 이 방법은 가끔씩 머리 쓰며 전시를 보기 귀찮을 때 쓰곤 한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을 이 방식으로 보았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미술 소장품을 내보이는 상설전이다. 상설전시는 '공간으로 전시 보기' 방법을 쓰기 아주 좋은 형식의 전시다. 왜냐하면, 상설전은 대체로 시대순에 따라 전시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방식에는 전시의 의도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내용은 사회적으로 합의된 것인 만큼, 역사의 순서를 따르는 전시도 그것과 거의 비슷한 맥락으로 구성되며 따라서 그 의도가 최소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상설전은 작품 하나하나를 깊이 이해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보게 되고, 따라서 더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역시 역사의 흐름을 따르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190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중반 이후 근현대 시기의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상설전을 보기 전 이미 1층에서 특별전을 보아 집중력이 약간 떨어진 상태여서, 가볍게 전시를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3층 전시실로 향했다. 그런 필자의 마음을 읽은 듯, 전시실로 가는 길에서부터 건축물이 주는 시각적인 즐거움이 느껴졌다. 상설전은 과천관의 지상 2, 3층 전시실에서 열리는데, 건물 중앙의 나선형 슬로프를 따라 올라가서 돔 형식의 복도를 통과하면 과천관의 전시실이 한눈에 보이는 보이드(빈)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수직과 수평으로 시원하게 뻗은 공간이 슬로프를 따라 걸어 올라온 보람을 느끼게 해 준다.
전시실로 가는 길
가로로 긴 수평의 건축물
보이드 공간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가 전시실 내부로 들어오면 회화부터 미디어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놓여있다. 전시 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1. 모서리 공간의 활용
2. 실내로 빛을 들여오는 천창
이 두 가지다. 먼저 전시실은 벽으로 잘게 나뉘어 있어 모서리 공간이 무척 많다. 가로의 두 면이 맞붙어 생기는 모서리의 직선과 그로부터 뻗어나가는 대각선의 모서리는관객의 시선을 그 앞에 놓인 작품으로 유도하는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무대 장치가 된다.
모서리가 만들어내는 원근감이 작품으로 시선을 끄는 역할을 한다.
둘째로, 3층 전시실 곳곳에는 실외로부터 빛을 들여오는 천창이 있어 자연스러운 빛과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는 건물의 꼭대기층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전시 공간들은 대체로 지하에 있거나 건물의 중간층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거의 인공조명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인공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품은 균질하고 완벽한 모습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점이 작품과의 심리적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반면 자연의 빛과 함께 보는 작품은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편안한 심리적 거리를 만들어준다.
자연광 아래에 놓인 작품들. 뚜렷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지만 은은한 빛이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외에도 전시장은 작품의 배치만으로 공간의 강약을 조절하고 있다. 층고가 비교적 낮고 조도도 낮은 2층 전시실에는 역동적인 자세로 쭈욱 늘어나 있는 작품을 대각선으로 두어 공간의 무게 중심을 잡는다.
또한, 작은 회화 및 조각 작품들이 모여있는 전시실에서는 직교하는 전시대 위에 조각을 두어 회화와 조각이라는 작품의 장르를 각각 묶어 동선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이렇듯 작품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따라 전시를 보면, 둘 사이의 상호작용이 눈에 들어오면서 작품과 공간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느껴진다. 저마다의 에너지를 가진 생명체들의 모임 사이를 부유하는 감각은 전시 감상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이번 글에서 필자는 작품의 이름이나 의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에 관한 한 편의 글을 썼다. 이렇듯 꼭 작품만 봐야 전시를 제대로 본 것은 아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관람객 각자의 관심에 따라 다른 것을 보고 가면 된다.
이번 글의 제목은 필자의 매거진 제목과도 같다. 그동안 이 매거진에 해당하는 주제의 글들을 많이 썼지만, 이렇게 전시를 보는 이유나 배경에 관해 언급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그 이야기를 풀어보았다. 전시를 보는데 이렇게 다양한 이유와 방법이 있으니, 사람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전시를 보고 그로부터 좋은 에너지를 얻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