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해가 떴다를 반복하더니 역시 뤽상부르 공원은 밀림으로 변해 있었다. 나뭇잎 크기가 성인 얼굴 크기와 비슷하다. 오늘도 하루종일 흐림이다. 1년이 지나도 파리 날씨의 변덕은 적응이 안 된다. 허나 그 변화무쌍함이 파리의 또 다른 매력인 건 조금씩 느끼고 있다. 화창한 날엔 구걸하는 거지마저 아름다워 보이지만, 에펠탑 꼭지가 가려진 오늘 같은 날엔 내면의 멜랑콜리한 예술가가 소환된다. 우울과 몽상이 딱 어울리는. 조울의 경계를 넘나들 때 예술적 생산력이 정점에 오르는 것처럼. 예술가들이 파리로 몰린 것도 이런 이유가 아녔을까. 울창한 나무와 먹구름을 배경으로 하는 뤽상부르 공원의 조각이 오늘따라 쇠락하는 로마 말기를 동경했던 데카당스 작품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