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서, 가끔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휴양지의 클리셰는 야자수, 푸른 바다와 하늘, 강렬한 태양, 모래사장 위에서 태닝 하는 사람들 정도일 텐데, 이 요소가 들어맞는 곳은 칸, 니스가 있는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다. 하지만 비싼 데다, 요즘 같은 민족 갈등이 심할 때, 극우의 본산을 방문할 이유는 없다. 휴양지 클리셰에 다음으로 잘 어울리는 곳이 바르셀로나. 취항 노선도 많고, 사람들도 파리보다 친절하고 무엇보다 예전에 몇 번 와봐서 편했다. 문제는 바르셀로나가 여름 방문지로 좋다는 생각을 한 게 나만이 아니라는 점. 7말 8초 여름, '해운대 피서객으로 발 디딜 틈 없어' 뉴스 리포트 스케치에 나올법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좁은 틈 사이로 배구와 축구를 하는 사람마저 보인다. 클리셰는 깨졌다. 리스본도 관광객 폭증으로 몸살을 앓는다더니 바르셀로나도 상황이 비슷해 보였다. 포스트 코로나, 이제 누구든 인파 속에서 여유를 찾는 비법을 익힐 필요가 있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