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아비뇽이란 도시는 세계사 시간에 들은 정체불명의 용어'아비뇽유수'로 처음 접하게 된다. 당시 유수의 뜻을 몰라 그냥 통으로 암기했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잡아 가둠'이란 뜻이라는데 영어 단어 captivity가 차라리 쉽다.) 그때 프랑스 왕이 교황을 로마에서 끌고 와 가둔 초특급 감옥이 아비뇽 교황청이다. 그래도 로마 교황을 강제 이주 시키는 프로젝트니, 새 집 건축에 얼마나 공을 들였겠는가. 교황이 로마로 돌아간 뒤 빈 집을 그냥 두기 아까웠던 아비뇽시는 이곳을 미술 전시 등으로 활용하다가, 1947년 그곳에서 연극을 선보이기로 결정한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아비뇽 연극제다. 내가 아비뇽을 찾았을 땐 77회 아비뇽 연극제가 한창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건 교황청에서 하는 공연. 당연히 표를 못 구했지만, 구했다 한들 2시간 가까운 연극을 애들과 보는 건 불가능한 일. 다행인 건 도시 전체가 거대한 공연장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교황청 앞 작은 광장에선 극장을 못 잡은 아마추어팀이 줄을 서서 공연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알고 보니 이런 거리 공연도 실력에 따라 설 수 있는 공간이 나뉘어 있었고, 교황청 근처는 당연히 로열 거리 공연장이었다.) 이렇게나마 축제의 분위기를 느끼는 게 폭염이 찾아온 아비뇽에서 내가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