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산봉우리를 보며 인적이 드문 스키 슬로프를 내려올 때 느꼈던 감정을 에메랄드 컬러로 가득한 에스빠홍Esparron 호수에 구명조끼를 입고 물에 들어가서 다시 느꼈다. 이렇게 사치스러워도 되나. 감탄스러워서 행복해야 할 순간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먼저 나온 건 생산성을 가장 중시하며 살아온 집단의 DNA탓일 거다. 베짱이와 개미 우화가 얼마나 효과적인 세뇌 교육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휴가를 와도 어떻게 해야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휴가지에서 뭘 해야 가성비가 높은 지를 고민한다. 알찬 휴가. 프랑스 남부에 왔으면 라벤더 밭을 가고, 기념품을 사가야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에스빠홍 호수 주변 사람들은 일단 동작부터 느렸다. 노를 젓다 말다, 호수에 잠깐 들어갔다 나왔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는 바캉스 고수들. 물론 내겐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갖기 어려운 삶의 리듬과 속도다. 오늘도 패들 보트를 빌린 난 더 다양한 호수 풍경을 둘러보기 위해 최대한 멀리 나갔고, 보트 반납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지막 1시간은 발로 노 젓는 노동을 해야 했다. 늘 이런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