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르크 덕에 이기긴 했지만, 프랑스는 왕과 왕자가 영국에 포로로 잡혔을 정도로 백년전쟁 내내 영국에 밀렸다. 나라 꼴은 엉망일 수밖에. 이에 포목 상인 에티엔 마르셀 Étienne Marcel은 훗날 프랑스혁명의 출발이 되는 삼부회 소집을 요구하고, 왕정 개혁을 시도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점차 과격해져, 나중엔 왕을 몰아내고 본인이 원하는 왕을 앉히는 데까지 나아갔다. 부관이 에티엔 마르셀을 암살하며 그의 거사는 좌절됐고, 동조자들은 지금의 파리시청 터에서 모조리 처형당했다. 놀라운 건 유교의 세계관에선 극악무도한 역적일 수밖에 없는 에티엔 마르셀의 동상이 시청 앞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 나라를 나보다 먼저 생각하라고 배워온, 시청 앞 동상으로는 나라를 구한 장군님이 익숙한 나로서는 프랑스인의 멘탈리티가 낯설다. 프랑스인들이 늘 국가에 불만을 갖고, 툭하면 시위를 하는 것도, 에티엔 마르셀을 시청 앞에 세워놓는 것과 무방하지 않을 터. 이 혁명가 혹은 역적의 동상은 국가 위에 시민이 있음을 기억하려는 파리의 의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