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프랑스 정치인을 만났는데 자크 시라크 Jacques Chirac 전 프랑스 대통령 얘기가 나왔다. 그분이 동아시아의 친구였다는 건 너도 알잖아라고 그는 말했고 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 그런 친구를 둔 적이 있었나 싶었다. 찾아보니 내 친구 자격은 충분했다. 고등학교 때 수업 땡땡이치고 기메 동양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냈고, 훗날 방중하여 본인의 해박한 중국 예술품 지식을 드러내 장쩌민 주석을 놀라게 했으며, 한국의 외규장각 문서 반환에도 놀랍도록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고, 입만 열면 스모 예찬을 하는 일본 마니아였으면서도 역사적 과오에 대해선 사과를 해야 한다고 일본에 일침 놓던 대통령였다. 상징적 건물에 본인의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하는 프랑스 대통령의 욕망을 이어받아,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에게 비유럽 인류학 박물관을 짓게 하는데, 이곳이 일명 자크 시라크 박물관으로 불리는 케브랑리 Quai Branly 박물관이다. 특이한 형태의 전시 공간에 온갖 원시적이고 이국적아 조각이 넘쳐난다. 동아시아 친구의 박물관치곤 동아시아 보물이 적었지만, 오세아니아의 기괴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방문 가치가 충분하다. (이걸 언제 다 모았냐 이 제국주의자들의 부지런한 후손들아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