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켜졌다.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파리의 화려한 연말 조명. 하지만 일상에 묻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사람에게 점등은, 올해도 끝났음을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경고이기도 하다. 연말 조명은 샹젤리제나 시청 앞뿐만 아니라 파리의 모든 동네에도 설치된다. 우리 집 앞에도, 오늘 찾은 유서 깊은 생제르망데프레 근처의 부치 거리에도 불이 켜졌다. 부치 거리는 중세시대에 당시의 파리로 들어가는 진입로, 우리로 치면 4대 문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 같은 곳이었다. 과거의 파리나 서울이나 지금보다 크기가 훨씬 작았을 테니. 4대 문 근처가 그랬던 것처럼 부치 거리는 오랜 기간 상인들과 행인들, 그리고 마차로 늘 붐볐던 곳이었으며, 지금도 사람들, 특히 현지인들이 몰리는 골목이다. 다만 지금은 서울의 청담동처럼 비싸지만 힙한 샵이나 식당이 많은 동네가 됐으며, 날이 좋건 궂건, 1년 내내 야외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한 것도 없이 1년이 지나가니 난 뭔가 조바심이 나는데, 파리 사람들은 벌써부터 연말 놀자 모드로 진입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