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파리 와서 애들 끌고 다닐 때, 유일하게 저항 없이 흥미롭게 구경한 곳이 록세루아 성당이다. 자극적인 스토리 덕분이었다. 구교, 신교 갈등이 극심했을 때 프랑스 절대권력 카트린 메디치가 종교화합을 위해 자신의 딸을 신교 나바로 공국의 왕자와 결혼시키기로 결정하고 신교 하객을 파리로 초대한 것. 물론 배신과 거짓의 시절이었고 성 바르톨로메오 대축일날, 록세루아 성당의 종유 울리면서, 신교 하객 대학살의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종교가 다른 인간은 생명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구교도들은 폭력 본성을 마음껏 분출했다. 지금 록세루아 성당 앞 거리는 당시 피살된 신교 리더 콜리니 제독의 이름을 땄다. 파리를 심시티 오락하듯 개조했던 오스만 남작은 사실 시청에서 루브르 성으로 연결되는 길을 뚫고자 했지만 록세루아 성당의 상징성을 감안, 공사 계획을 수정해 빅토리아 거리는 록세루아 성당 앞에서 끝나게 됐다. 신교 대학살 이후 간신히 목숨을 건진 나바로 공국의 왕자가 훗날 앙리 4세가 되어 파리로 돌아오게 되니, 역사는 늘 우리에게 세상일 어찌 될지 알 수 없다는 교훈을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