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지구를 걷다 보면 화려한 집이 많아 집중 안 하고 걸으면 다 비슷비슷해 보인다.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건물은 슐리 호텔. 여기서 호텔은 숙박업소가 아닌, 개인 저택을 지칭하는 용어다. 이 집은 1624년 앙리 4세 시절 재무부 장관이었던 슐리 공작이 살던 곳이다. 파리의 힘이 서서히 강해지면서, 지방의 귀족들이 하나 둘 파리로 모여들었는데, 문제는 자기가 살던 지방의 샤토, 그러니까 성을 파리엔 지을 수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최대한 성 느낌을 살린 이런 식의 호텔, 즉, 개인 저택이 등장했다. 성문 비슷하게 입구를 크게 만들고, 마차 주차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다. 시끄럽고 냄새나는 길가 주변 방은 하인들이 묵었고, 주차장을 지나면 넓은 정원이 펼쳐져있다. 물론 워낙 오래된 건물이고 혁명 이후 마레 지구가 빈민 구역으로 전락하면서 건물의 일부가 무너졌다. 1960년대 감쪽같이 1600년대 건물 모습을 복원한뒤, 그 결과가 만족스러웠던지 문화 유적 관리 위원회 본부가 슐리 오텔에 들어왔다. 정원을 지나 저택으로 들어가면 보주 광장으로 이어지는 작은 개구멍, 통로가 나온다. 당시 보주광장서 마상 시합 등 이벤트가 많이 열렸다는데, 귀족들도 어지간히 걷기 싫어했던 모양이다. 이런 문까지 만든 거 보면. 집 안엔 역사 전문 서점이 있는데, 분위기가 좋아 꼭 들려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