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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Feb 21. 2024

오늘도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0220@Kyiv


공습경보가 울렸다. 인간의 불쾌감을 극대화하는 데시벨과 헤르츠의 사이에서 경보음은 터져 나온다. 그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본능적인 불쾌한 사운드. 그런데 사람들의 표정이 차분하다. 뭐지. 그냥 있어도 되는 건가. 하지만 덤덤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다들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옆에 있던 우크라이나 친구도 우리에게 서두르라고 재촉한다. 다들 표정과 발걸음은 여유가 있지만, 그럼에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별일인 것처럼. 지하 대피소로 들어가니 사람이 꽤 많다. 무료 와이파이도 터진다. 공습 상황 확인을 위한 것. 대피소 입구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지하로 들어가긴 귀찮지만, 여차하면 빠르게 대피하겠다는 심산이다. 전쟁 2년 차, 키이우 시민들의 연륜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그렇게 우린 대피소 근처에서 1시간을 머물렀다. 이건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민방위 훈련은 아닌 것이다.



키이우는 하루종일 을씨년스러웠다. 진눈깨비가 날렸고 바람이 차가웠다. 매일 대피소를 드나드는 시민들은 이제 일상인 듯 아닌듯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이단 광장에선 늘 이런저런 전쟁 피해자의 시위가 열렸지만. 퇴근 시간이 되면 도로는 정체가 심해졌다. 이런 우울한 풍경의 유일한 위안은 따뜻한 수프였다.



보르쉬. 보기엔 아주 얼큰한 매운탕처럼 생겼지만 전혀 맵지 않은, 색깔만 붉은 고기국이다. 여기에 요구르트를 넣어 먹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은 맛이다. 검정빵과 러시아식 돼지비계가 같이 나온다. 그래도 수프 속 야채와 고기를 함께 먹으니 어설프게 나미 육개장 먹는 느낌이 난다. 물론 매운맛이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지난번 여름에 왔을 땐 차가운 보르쉬를 먹었었다. 이렇게나 자주 키이우에 오게 될 줄 몰랐지만, 그래도 이젠 보르쉬를 먹으면, 그래 이 맛이야 정도의 감탄사는 내뱉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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