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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Feb 20. 2024

685일째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

0218@Kyiv

바르샤바 동역

이제 관심도 없는데 우크라이나는 가서 뭐 하냐는 반응이 많았고, 사실 나도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고통과 슬픔을 또 봐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고. 무엇보다 비행기 운행이 중단 됐기 때문에 키이우에 가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우크라이나를 차로 달려보면 이 나라가 생각보다 얼마나 큰지, 푸틴은 정녕 이 큰 나라를 어찌하려고 침공하려 했던 건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바르샤바-키이우 열차 복도

이번엔 기차를 선택했다. 그전엔 차를 타고 가서 도보로 국경을 건넌 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식이었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적게 걸리지만 힘들다. 바르샤바에서 출발하는 기차는 좁지만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침대라는 표현은   부정확하지만 차보다는 훨씬 편했다. 게다가 국경을 건너는 열차는 늘 묘한 낭만을 불러일으킨다. 국경에서 2시간 가까이 정차하는  시간 포함, 20시간이 걸려 키이우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밥이 나올 리 만무했고, 20시간 동안 주전부리로 허기나 겨우 달랬다. 밥을 먹으러 키이우 중심, 마이단 광장에 가니 엄청난 인파가 전쟁 포로 송환을 외치며 시위 중이었다. 그곳에서 포로가 된 아빠를 기다리는 소녀를 만났다. 아빠는 658일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는 시종일관 애써 밝게 웃으며 슬픔을 감췄는데, 생일날 아빠가 특별히 보고 싶었다는 말을 할 때는, 눈시울에 눈물이 고였다. 소녀는 민망했는지 황급히 미소 지으며 어색함을 달랬다. 2년이 넘어가니 아무도 전쟁에 관심을 두지 않지만, 전쟁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겐, 외신이 관심을 갖건 말건,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전투를 치러야만 했다. 심지어 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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