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의 ‘완전히 개방된 대회’(Wide Open Games) 콘셉트가 도쿄 올림픽 폐막식 때 공개됐을 때 전 세계인들은 그 계획에 매료됐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승마를, 그랑팔레에서 펜싱을, 에펠탑 앞에서 비치발리볼 경기를 한다는 건 얼마나 파격적인 풍경인가. ‘경기장을 벗어난 경기’라는 개념도 인상적이지만, 내세울 명소가 많다는 것 역시 부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계획이 발표됐을 때, 정작 불만을 쏟아낸 건 파리지앵이었다. 툭하면 도로가 차단되는데 우회 도로는 알려주지 않는, 대중교통이 출퇴근 시간에 갑자기 끊겨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도시에서 엄청난 인내심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빽빽한 파리 한가운데서 경기를 펼친다는 건 무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파리 출근길의 일상적인 풍경.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파리에 와보니 파리지앵의 불안이 한층 더 이해됐다. 프랑스엔 싸데팡(Ça dépend) 문화, 그러니까 그때그때 다른 ‘케바케’가 있다. 면허증을 신청한 사람에게 오는 면허증 수령 문자가 만약 나에게만 안 왔다면. 그건 싸데팡이다.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사회 행정 시스템의 오류가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셈인데, 이런 실수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주변 사람들 모두 택배를 잘 받았는데 왜 나만 못 받았냐고 따지는 건 싸데팡 문화에선 무의미하다. 실수를 저지르고도 태연하며, 그 실수로 인해 손해를 입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파리의 습속은 전부 싸데팡 문화에서 기인한다. 오류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완전히 개방된 대회라니, 나도 불안해졌다.
올림픽이 끝났다. 파리는 성공적으로 완전히 개방된 대회를 마무리했다. 불평불만이 일상인 프랑스 언론도 호평 일색이다. 유럽 언론은 물론, 미국 등 외신들도 성공적인 축제였다고 평가하는 분위기. 모두 올림픽 시작 전, 실현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컸기 때문일 터. 그 불안은 폭우 속에 치른 개막식에서 더욱 증폭됐다. 한국을 북한으로 부르고, 거꾸로 걸린 오륜기를 태연하게 게양하는 모습을 보며 프랑스 사회의 내재화된 오류가 결국 세계인의 축제를 망칠 거란 불안이 엄습했다. 심지어 은메달 딴 자국 국기를 동메달 딴 선수의 국기보다 낮게 게양하는 걸 보며 만민에게 평등한 프랑스의 싸데팡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런데도 축제는 성공적이었다. 올림픽이 망할 거란 계산을 빗나가게 만든 건 예측하지 못한 몇 가지 변수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풍경으로 이미지 구현을 위해 빚어진 혼란을 지워냈다
첫 번째 변수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완전히 개방된 대회가 만들어낸 화려한 이미지였다. 대회 시작 전엔 그저 도로를 가로막은 흉측한 임시 공사 시설처럼 보였다. 하지만 에펠탑 스타디움의 비치발리볼 경기장을 미리 방문하고, 오류투성이 프랑스의 믿는 구석을 어렴풋이 확인했다. 실제 경기가 진행 중인 에펠탑 경기장의 모습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까이서 본 에펠탑은 더 웅장하게 보였고, 파란 하늘과 하얀 모래 코트의 대비는 포카리스웨트 광고처럼 상큼했다. 함성을 지르는 관중들이 채운 관중석은 더는 공사현장의 임시 건물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히 에펠탑 뒤로 해가 넘어가는 시각의 비치발리볼 경기장은 초현실주의적 느낌마저 불러올 정도였다. 조명으로 반짝이는 에펠탑과 어둠과 붉음이 교차하는 하늘, 그리고 하얀 백사장을 비춘 백열 조명까지. 그랑팔레의 펜싱 경기장이나 베르사유 궁전의 근대 5종 경기장도 놀랍긴 마찬가지. 텅 빈 곳에 세워진 대형 관중석은 프랑스의 ‘아시바’ 활용 기술, 공사판 비계 활용 능력의 탁월성을 제대로 보여줬다.
공사 중이던 그랑팔레를 이렇게 경험하게 되다니
자원봉사자의 힘
하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한 두 번째 변수가 이번 올림픽 성공의 더 큰 원인일 게다. 바로 친절한 파리지앵. 아니, 친절한 파리지앵이라니. 시에서나 허용될법한 형용모순 표현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일단 자원봉사자 수가 많았다. 사실 카타르 월드컵 혹은 예전 베이징 올림픽처럼, 국가의 군중 동원력이 강한 나라에서나 대규모 자원봉사자 모집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주말이면 스트레스 해소하듯 시위에 참여하고 정부에 늘 불만을 쏟아내는 파리에서 많은 자원봉사자가 대규모 국가 행사를 위해 힘을 보탤 줄 상상하지 못했다. 수만 많은 게 아니었다. 행동도 잽싸고 야무졌다. 마트에서 손님 줄이 길어지건 말건, 상품 계산하며 옆 점원과 수다 떨며 일하는 파리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마저 친절했다. 혹자는 프랑스 전국의 경찰이 동원돼, 친절한 시골 경찰 비중이 높아진 게 경찰 친절의 이유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길거리에 경찰이 늘어나니, 자연스레 소매치기나 잡상인은 줄어들었다.
이렇게 한산한 샹젤리레 거리라니
사실 파리의 완전히 개방된 대회 계획이 발표됐을 때 불평을 쏟아내던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던 파리지엥이 있었으니, 장기 바캉스를 계획한 사람들이었다. 여름이면 파리를 떠날 그들에게 파리가 카오스로 변하건 말건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빈집을 숙박으로 내놓을 수도 있으니 나쁠 게 없었다. 올림픽에 무관심한 파리 시민의 수는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마치 전 세계에서 올 관광객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듯, 파리지앵은 도시를 빠져나갔고, 하루아침에 운임이 2배나 오른 지하철은 평소보다 훨씬 한산했다. 올림픽 차선을 운행하면 도로가 마비될 거란 예상도 빗나갔다. 올림픽 조직위는 올림픽 기간 활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앱을 배포했는데, 평소의 프랑스답지 않게 아주 똑똑했다. 대중교통 혼란을 피할 수 있었던 또 다른 비결이다.
릴에서 열린 농구경기. 축구 농구 경기 일부를 리옹, 마르세유 등에서 개최하며 올림픽을 전국적인 축제로 확산시켰다
올림픽 기간 중 알마 다리 앞에 배치된 2~3명의 교통경찰이 일부 도로가 차단됐음에도 불구하고 교통량을 원활하게 조절하는 걸 보며, 올림픽 직전 혼돈의 알마 다리를 떠올렸다. 당시 차량은 서로 뒤엉켜 누구도 움직이지 못했지만, 교통경찰은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파리지앵은 친절할 수 있었고, 경찰들은 도로를 순조롭게 조절할 수 있었으며,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단 사실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확인됐다. 두려운 건 프랑스인들의 올림픽 후유증. 평소에 차갑고 불친절하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친절하기 위해 애썼으니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겠는가. 여름 바캉스와 패럴림픽이 끝나는 9월 초, 파리는 다시 혼돈의 유니버스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는 게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