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인생을 사는 방법

존 윌리엄스 <스토너>

by 알스카토


1.


기말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딸은 ‘스카(스터디카페)’라 불리는, 우리 시절의 독서실로 향했다. 날도 추운데 그냥 집에서 하라는 엄마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간 딸은 자신을 밤 12시에 ‘스카’로 데리러 오라고 했다. 서울에 첫눈이 내린 날이었다.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을 때, 눈은 훨씬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도로엔 눈이 쌓였고, 곧이어 제설차량이 결빙 방지 작업을 시작했다. 독서실 근처에 도착했을 때, 멀리서 중학생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검은 실루엣의 두 학생은 차 위에 쌓인 눈으로 작은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야밤에 뭣들 하는 건가 싶어 쳐다보는데, 두 실루엣 중 하나는 나의 딸이었다.

눈을 털고 차에 탄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즐거운 날이었어. 시험에 대한 불안은, 독서실을 나서며 마주친, 눈 내리는 풍경 앞에 잊혔다. 눈이 오면 신나는 강아지처럼, 두 아이는 눈을 맞으며 즐거워했고, 마침 둘은 편의점에서 파는 군고구마를 하나씩 사 먹은 참이었다. ‘눈을 맞으며 뜨거운 군고구마를 후후 식혀가며 먹는 기분이 얼마나 짜릿했는데’라고 아이는 말했다.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도 시험공부 시간이 부족하다며 짜증을 내던 아이였다. 물론 그 짜릿함의 순간은 짧았고, 아이는 다시 시험에 대한 압박과 일상의 무게를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딸의 표정은 밝았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발견한 사람처럼.

2.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는 작가의 이름만큼이나 평범해 보이는 소설이다. <스토너>는 미주리 대학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의 평범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스토너의 부모는 농사꾼이었다. 그들은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P.7)이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스토너도 부모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살 예정이었다. 하지만 군청에서 스토너에게 농업 대학 입학을 권유하면서, 그의 인생 항로를 달라졌다. 물론 처음 학교에 들어간 스토너는 ‘집에서 하는 허드렛일보다 조금 덜 피곤한 허드렛일을 하듯이 학교에서 공부를 했다.’ (P.8) 하지만 그는 대학에서 영문과 교수 슬론의 강의를 듣고, 학문의 즐거움에 빠져들었고, 그때를 기점으로 스토너는 ‘버티는 삶’에서 ‘탐험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윌리엄 스토너 앞에 놓인 장래는 밝고 확실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장래를 수많은 사건과 변화와 가능성의 흐름이라기보다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보았다. 그에게 장래는 곧 웅장한 대학 도서관이었다. 언젠가 도서관에 새로운 건물들이 증축될 수 있고, 새로운 책들이 들어올 수도 있고, 낡은 책들이 치워질 수도 있겠지만, 도서관의 진정한 본질은 근본적으로 불변이었다. 그는 몸을 바치기로 했지만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곳에서 자신의 장래를 보았다. (P.36)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가 탐험한 자신의 장래는 때론 무료했고, 종종 초라했다. 첫눈에 반해 결혼한 아내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했으며, 자신에 적대적인 직장 동료는 그의 삶을 피곤하게 했다. 그는 실패작으로 끝난 결혼을 견디며, 학교로 출근했고, 우호적이지 않은 동료들 사이에서 연구하고 강의했다. 그게 그가 탐험한 장래의 거의 전부였다. 물론 작은 성과도 있었다. 스토너는 자신의 연구를 책으로 출판했고, 대학원생 제자와 진정한 사랑(외도)을 나누기도 했다. 이게 전부였다. 스토너는 고통과 위안의 다발로 묶인 평범한 자신의 인생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와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그가 분빌에서 농사를 지으며 보낸 어린 시절을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지만, 무명의 존재로서 근면하고 금욕적으로 살다 간 선조들에게서 혈연을 통해 물려받은 것에 대한 지식이 항상 의식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선조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을 향해 무표정하고 단단하고 황량한 얼굴을 보여주자는 공통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P.307)


3.


스토너의 인생은 성공한 것인가 실패한 것인가. 여기서 잠시 옮긴이의 말을 통해 등장한 작가의 전지적 작가 시점을 빌릴 필요가 있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스토너의 삶을 슬프고 불행한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P.393) 실패한 결혼, 실패한 육아, 실패한 외도, 실패한 직장 생활, 분명 스토너는 실패했다. 독자들이 소설 내용을 오해한 게 아니란 의미다. 그럼에도 작가는 스토너의 영웅적 면모를 발견했다. 소설마니아들이 <스토너>에 열광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한 평범한 인생의 위대함. 바로 여기서 독자들은 위안을 받는다.

스토너는 영문학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영문학에 대한 열정은 ‘즐거움이 없는 노동에 평생을 바친’(P.151) 부모님의 성실함을 만나, 스토너의 인생을 완성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P.272)라는 스토너의 깨달음은 학문에 대한 열정의 양분이 됐다. 스토너가 정신 쇠약 아내의 히스테리를 공부의 즐거움으로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다. 때문에 작가 존 윌리엄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P.393) 스토너의 삶을 아주 훌륭했다고 규정한 것이다. 길게 보면 그는 실패한 인생처럼 보이는 삶을 살았지만, 인생의 순간순간은 열정적이고 행복했다. 아래 문단은 스토너가 죽기 전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내린 평가다.

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 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 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 상대가 여성이든 시(詩)든, 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 봐! 나는 살아 있어. (P.350)


4.


딸은 중2가 되면서, 소위 말하는 한국 입시교육의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탔다. 나는 입시 교육 기계를 파괴하고, 아이를 자유롭게 해 줄 정도의 기개 있는 부모는 아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컨베이어 벨트 위의 생존 조건이 가혹한 건 너무나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순간의 묶음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중간고사를 마치고, 자신이 좋아하는 오빠들의 콘서트를 가기 위해 새벽 5시에 집을 나서는 아이의 표정은 세상 행복해 보였다.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한다거나, 심지어 학원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먹으며 웃고 수다 떨기를 반복하는 일도 즐거운 기억의 영역이다.

군고구마를 먹으며 눈길을 걷던 상황을 말하는 딸 이야기를 듣는데 스토너가 떠올랐다. 그 이야기를 스토너가 들었다면, 아마 바로 그 자리에서 ‘그게 바로 행복이야’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기말고사의 압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지만, 아이는 최선을 다해 시험 준비를 했고, 뿌듯한 마음으로 하얗게 변한 길 위를 걸었으며, 추위를 달래기 위해 군고구마를 사 먹은 기억은 나중에 아이가 커서 ‘라때는 말이지’를 시전 할 때 종종 등장하지 않겠는가. 가능성이 열려있는 아이와 달리, 삶의 모습이 서서히 굳어가는 아저씨의 불안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내 인생은 이미 실패한 것인가. 바로 이런 생각에 우울감이 몰려들 때 스토너를 다시 읽는다. 길게 보면 실패해 보이는 삶도 순간의 행복이 모이면 성공한 삶이 될 수 있다.

한편 아이에게 강박적으로 집착하던 아디스의 태도가 조금 느슨해졌기 때문에 아이도 이제 가끔 미소를 지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편안한 태도로 이야기를 건넬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가끔 이만하면 살 만하다고,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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