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에 없는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알스카토


‘삶에서 그토록 많은 부분이 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그럴 만하면서도 동시에 심히 부당하게 느껴졌다. (P.65)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 빌 펄롱은 불운과 행운을 동시에 갖고 태어났다. 16세에 가사 일꾼으로 일하다 임신한 어머니는 펄롱을 낳았다. 독실한 가톨릭 국가였던 아일랜드의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그의 삶은 시작부터 완전히 꼬인 셈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일하던 집주인, 미시즈 윌슨은 펄롱 모자를 내치지 않았다. 오히려 펄롱을 자식처럼 생각하며 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1980년대 중반, 아일랜드의 경제 상황은 지독히 나빴지만, 펄롱은 특유의 성실함을 무기로 아내와 다섯 딸을 부양하며, 풍요롭진 않지만,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실제로 발생했던 아일랜드의 수도원 추문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아일랜드 막달레나 수녀원은 타락한 여성의 교화를 이유로 혼외 임신한 어린 여성이나 성매매 여성, 고아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P.131)까지 수용하고 그들에게 세탁일을 시켰다. 이런 강제 노역을 시키던 막달레나 수도원은 1996년 문을 닫았고, 2013년이 돼서야 정부가 수도원의 감금, 은폐 공작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다. 2021년엔 약 9,000명의 아이가 수도원에서 사망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클레어 키건의 소설은 실존적 고민 속에 살던 펄롱이 수도원에 갇힌 아이 하나를 고민 끝에 구출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스포일러가 아니다)


하지만 펄롱이 행동에 나서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우선 마을 커뮤니티의 의도적 무시가 있었다. 사람들은 수녀원의 존재를 알았지만 대부분 쉬쉬했다. 마을 내 수녀원의 영향력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이라는 펄롱의 질문에 아내인 아일린은 “내 말이 바로 그거야.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P57) 라며 펄롱의 쓸데없는 관심을 차단했다. 모두가 자기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어려운 시절이었다. 하지만 수녀원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펄롱에게 대단한 부탁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강가로 자신을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던 더블린 말투의 소녀는 “저한테는 아무도 없어요. 그냥 물에 빠져 죽고 싶어요. 우리한테 씨발 그것도 못 해줘요?”(P.52)라고 말할 정도였다.


펄롱을 고통스럽게 만든 건 마을 사람들의 무관심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시간에 맞춰 삼종기도를 바쳤고,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리 점화식을 했다. 매주 일요일이 되면 성수로 성호를 그었으며, 예수님이 당한 고통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기도했다. 크리스마스 때면 케이크를 만들고, 노래를 불렀다. 서로 반가운 인사를 나눴으며, 작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주민들은 그렇게 일상적 ’ 선행‘으로 자신들의 무관심을 지워냈다. 펄롱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건 바로 주민들의 이런 위선이었다.

펄롱을 괴롭힌 것은 아이가 석탄광에 갇혀 있었다는 것도, 수녀원장의 태도도 아니었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 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P.99)

펄롱이 아내인 아일린과 달리, 수녀원에 감금되어 있던 아이들을 계속 생각한 건 펄롱의 출생 배경과 관련이 크다. 펄롱의 엄마도 충분히 수녀원에서 짐승 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 수 있었다. 펄롱은 해외 어딘가로 입양되거나 버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펄롱이 어머니와 자신을 거둬준 미시즈 윌슨 부인을 계속 생각하는 이유다. 과연 아일린의 말처럼 미시즈 윌슨은 “그 큰 집에서 연금 받으면서 편히 지내는 데다가 농장도 있고 일은 당신 어머니하고 네드가 다 해줬는데, 세상에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P.57)이었기 때문에 펄롱에게 친절을 베풀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펄롱은 그렇게 생각했다. 펄롱의 운명을 바꾼 것은 미시즈 윌슨의 ’사소한 것들‘의 다발이었기 때문에. 윌슨 부인의 친절은 소시민 펄롱이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P.120)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본다. 한강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숲은 거대한 욕망의 그라운드처럼 보인다. 최근 재건축을 준비 중인 방배동 한 아파트에 '원조 부촌'이란 플래카드가 붙었다. 최근 서울 사람들 일부는 동네를 급으로 나누는 데, 방배동은 반포에 한참 못 미친단다. 20년 전만 해도 더 부유한 사람이 많이 살던 동네였으니, 방배동 사람들의 박탈감은 컸고, 한 건설사에서 재건축 통과 축하 플래카드를 통해 주민들의 욕망을 기게 막히게 집어낸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숨이 갑갑했다. 한국인의 아파트는 십수 년 넘게 생존을 걸고 경쟁하고 투쟁해 온 전리품이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니, 전리품의 등급을 더 세부적으로 나눌 수밖에. 정당한지도 의문인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확실히 나뉘었으니, 승자가 패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이 어찌 가능할까. 동네 급수 이야기가 씁쓸했던 이유다.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멀리 가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시내에서, 시 외곽에서 운 없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P.22)


결국 패자에 관한 관심은 나도 한순간에 패자의 위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시작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 유럽처럼 계급이 고착화된 사회는 아니지 않은가. 어렵사리 타인의 아픔에 공감한 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혁명의 시대가 아니다) 공감의 마음 위에 더해진 작은 친절과 배려, 클레어 키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세상을 조금 변화시킬 수 있다. 서울은 전 세계적으로 최첨단 도시 중의 한 곳이다. 불편한 게 전혀 없는 살기 편한 동네. 그럼에도 최신식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피로를 호소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도시의 지극히 당연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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