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슬픔

0506@한강 잠원지구

by 알스카토
한강 잠원지구 미식축구 필드


최근 단거리 러닝 기록 향상으로 득의양양하던 중1 둘째를 눌러줄 때가 왔다. 미식축구 경기장이 있는 한강 잠원지구는 아빠의 권위를 되찾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50미터 달리기를 제안하는 아들. '순간 스피드를 내는 근육은 30대 이후 쇠퇴한다고 하니 이건 아빠가 불리할 수 있겠다',라고 변명을 깔아놓길 잘했다. 50미터 달리기에서 졌기 때문이다. 이제 진짜 중요한 100미터. 50미터를 지나면서 아들을 제치는, 내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풍경은 50미터를 지나면서도 재현되지 않았다. 분명 발로 땅을 있는 힘껏 밀었지만, 몸은 생각만큼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또 패배. 충격이었다. 언젠가 질 걸 알았지만, 이렇게 일찍은 아녔다. 3일간 39킬로미터를 달렸다는 핑계도 이 패배감을 전혀 위로해주지 못했다.


아들은 400미터 달리기를 제안했다. 마치 쓰러진 아비의 권위를 이번에 아작 내겠다는 심산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장거리는 아빠가 잘하니 400미터는 아빠가 이길 수도 있어'라는 아들의 말은 조롱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승부욕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게 더 슬펐다. 왜냐면 이미 두 번의 달리기로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글펐다. 게다가 세 번 연속 질 수 없는 노릇. 집요하게 400미터 달리기를 제안하던 아들에게 결국 초딩스러운 분노를 쏟아내고 말았다. 넌 지는 게 좋아? 싫지? 아빠도 싫어! 그러니 그만하라고 이 무자비한 녀석아!


나의 패배 소식을 들은 아내는 기뻐하며 아들의 성장을 만끽했다. 첫째도 챔피언이 바뀌는 순간의 드라마를 즐기며 둘째의 승리를 흥미로워했다. 심지어 아빠의 패배 순간을 지켜봤던 막내는 아빠의 엉성한 달리기 폼을 지적했고, 초딩스러운 분노는 막내에게로 옮겨갔다. 저속노화. 40대 중반에 접어든 내 인생의 좌우명이었다. 하지만 좌우명은 인생의 결과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정작 아들에게 무자비하다고 화냈지만 무자비한 건 시간이었다. 시간을 받아들이라는 아내의 차분한 충고가 내 부아를 돋았다. 아들의 성장이 대견하면서도, 달리기 패배의 결과가 가져온 쓰라림을 그 누구도 공감해주지 않 더 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