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8@9호선 지하철
프랑스에서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파리가 전혀 그립지 않았다. 서울이 이렇게 매혹적인데. 무엇보다 '이방인'이라는 까끌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귀국 다음 날, 시차 적응을 못 해, 동작대교를 새벽에 뛰다가 엘리베어터에 갇히고 말았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다. 별 기대 없이 긴급 호출 버튼을 눌렀다. 자다 막 일어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한데 제가 지금 그쪽으로 가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란 안내를 한 뒤, 그는 약 1시간 뒤에 엘리베이터에서 나를 꺼내줬다. 그는 연신 너무 늦어 죄송하다고 사과했고, 난 효율의 세계로 다시 돌아온 것에 그저 감사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효율의 세계에서 받는 서비스는 달콤했지만, 나 역시 노동자로서 효율의 세계에 복무해야 했다. 압축적인 6개월을 보내고 나니 파리에서 살았던 시간이 아득해졌다. 토이의 노래가 떠오를 정도였다. '(파리!)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잊지 말아 줘) 프랑스로 떠나기 전엔 거의 없던 키오스크 앞에서 버벅거리다가(결재까지 가는 길은 왜 이리도 멀던가), 뒤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견딜 때면, 속도의 서울로 돌아온 걸 실감했다.
출근길에 정여울의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을 읽는데, 작가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감상한 빈센트 반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어찌나 디테일하게 묘사했던지, 갑자기 자책감가 후회가 몰려왔다. '그 긴 시간 동안 넌 왜 더 자주 보고 느끼고 즐기지 못한 것이냐' 하는 아쉬움. 파리에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낼 때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 보내고 있는 이 게으른 시간은 미래의 내가 간절히 되찾고 싶을 시간일 거란 걸. 아내는 한국에 와서 프랑스어 수업을 등록했고, 난 프랑스 여행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후회를 피하고 싶어 하지만 매 순간을 열정적으로 살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에(극소수의 정력가를 빼면), 시간이 지나면 후회를 하게 된다. 후회는 인간이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삽질이고, 그래서 우린 떠난 버스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