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칼리아와 록 음악

by Life with Fugue


유튜브로 감상한 김봄소리/문태국, 할보르센 파사칼리아 G단조. 개인적으로 비올라보다는 첼로가 각 성부가 도드라져서 더 듣기 좋은 것 같다. 파사칼리아는 샤콘과 마찬가지로 17세기 스페인에서 유래한 느린 3박자 무곡 양식의 하나이다. 북스테후데, 바흐, 그리고 영상 속 헨델의 파사칼리아(할보르센이 현악2중주로 편곡한 것임)가 유명하며, 바로크 시대에 한정된 양식이 아니라 브람스, 쇼스타코비치, 베베른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아울러 널리 사랑받은 정형화된 변주곡 형식이다.


단순한 주제를 계속 반복하는 저음성부(바소 오스티나토)의 토대 위에서 상성부가 점진적으로 변형, 발전되어 나가는 대위법적 전개방식이 파사칼리아의 주된 특징이다. 오스티나토의 규칙성이 깔아주는 안정감과 균형적 대비를 이루는 상성부의 자유로운 에너지가 고유한 심미적 만족을 준다. 이렇게 반복과 변주를 통해 악상이 점차 고조되며 극적이고 비장한 느낌을 주는 방식은 수많은 협주곡이나 교향곡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파사칼리아를 들을 때마다 나는 도어즈를 연상한다. 'Light my fire'의 무한반복되는 키보드 베이스, 키보드 상성부와 기타 솔로의 변주는 형식적인 면에서 100% 오스티나토 그 자체이지 않은가? 게다가 짐 모리슨의 반항적인 외침으로 갈무리하는 마지막 소절의 극적 카타르시스는 교향곡에서의 코다와 기능적으로 완전히 같다는 생각이다. 도어즈 뿐인가? 위대한 재즈나 록 명곡들은 각자 고유한 '리프'를 갖고 있으며, 리프의 반복과 발전을 통해 악상을 전개해 나간다. 이것이 디아벨리 변주곡이나 골드베르크 변주곡보다 가치 없는 음악이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나 역시 클래식을 매우 좋아하고 즐겨 듣지만, 클래식만이 진정 가치있는 음악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잘 만들어진 대중음악의 유행은 말하자면 '장치의 세속화' 현상이고, 사람들이 계층을 초월해 다양한 취향과 선호를 계발할 수 있게 도와주며, 자아비평/자기생산적 활동의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감상자들은 클래식에 비해 록이나 힙합, 댄스 음악은 문화적 맥락을 떠나 음악 자체적으로도 열등하다고 생각하는데, 고상한 음악과 저속한 음악이라는 이항대립적 구분법의 정당성은 완전히 논파된지 오래이다. 음악을 낡은 정치적 편견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소모하는 것은 멍청하고 무용한 짓이며, 과거에 비해 사람들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게 딱히 대중음악 탓은 아닌 것이다.


젊고 탁월한 두 연주자들의 아름다운 파사칼리아를 곱씹어 들으며 한 생각이다. 고음악이라고 죽은 음악이 아니듯, 대중성의 획득이나 시대정신의 반영이 꼭 음악성의 훼손을 의미하지도 않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카라얀은 뭐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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