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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Dec 02. 2020

존경하는 분들에게


 글은 職人의 길을 택해 묵묵히 정진하며 나아가는 일부 셰프님들에 헌정하는 찬사이자, 요리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외부인의 난폭한 낭만화, 철저히 주관적인 기대가 반영된 무책임한 글임을 미리 밝혀둔다. 뭣도 모르면서 함부로 우와 멋지다 하는  되게 무례할 수도 있다는  알기에, 미리 사죄드린다.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고 신념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 특히 대부분이 생업인 요리인들의 경우 그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이기도 한데, 그래서  멋진 것이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職人気質(쇼쿠닌카타기, 의역하면 장인 정신)라는 개념으로써 그들을 인정하고  존경해 왔는데, 장인 정신의 추구가  경제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안전망으로 기능하여 지속가능한 구조를 형성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장인이 아닌 서비스업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아 씁쓸하다. '손님은 왕이다' 이데올로기에 노동의 부가가치를 평가절하하는 개도국적 소비관이 더해져, 장인 정신은  굶어죽는 길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실에 타협하거나 좌절하여 겉만 번지르르하게 장인 흉내를 내는 아첨꾼으로 전락하거나, 아예  길을 떠난다.
 
대중적 취향에만 부합하려 애쓴다면, 모두에게 사랑받고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고자 한다면 쇼쿠닌에의 길은 요원하다. 파인다이닝이나 엄격한 전통 퀴진이 아니더라도 쇼쿠닌카타기를 추구하는 요리인이라면 장르 불문 그래선 안되며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런 역할은 백종원 식당이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게 열등하다거나 무가치하다는  아니라 서로 역할이 다르고 길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순수미술과 산업디자인의 관계처럼(물론 자본주의라는 대전제 하에서는 일단 팔려야 하는  똑같다).
 
배경음악을 지향하는 클래식 음악이 있을  있겠는가? 어떤 미술이 스스로 병풍이 되고자 하겠는가? 또한, 좋은 클래식 음악과 미술이 존재한다고 하여  음악이나 병풍의 가치가 감소하는가? 예술의 고상함 때문에 대중 문화는 배격당해야 하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위계가 아니라 영역의 차이일 뿐이며,    나름의 가치와 효용이 있고, 어느 길을 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다만 전락보다는 이탈이 윤리적으로 낫다는 생각이다. 쇼쿠닌의 길은 고되어서 싫고, 대중 음식점은 가오 상해서 싫은가? 요리를 그만둬야 한다.
 
요즘 나는 미술관이나 연주회에 가는 마음으로, 단골 레스토랑들만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쇼쿠닌 수준의 기술을 연마한 요리인이 특수한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전통을 체화하여 창조해내는 새롭고 탁월한 요리들을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쇼쿠닌카타기-극도로 연마된 기술 정도가 아니라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예술 말이다.  뱃속으로 사라져 버릴 초밥  ,  유한성과 조응하는 찰나의 예술적 사건을 희구한다. 이것은 낭만적 은유나 농담이 아닌 100% 진심이다.
 
바디우의 관점을 빌려 말하자면, 예술로서의 요리는 동시대의 수많은 다른 예술적 짜임들과 함께 존재하는 하나의 고유한 진리 절차이다. 그것은 장인이라는 이데아에 도달해 종결된 것이 아닌 끝없는 사유 과정 속에 있는 무엇이며, 다른 모든 예술 일반과 마찬가지로 진리에 관한  내재성과 독특함을 지닌다. 특정 국가의 식문화를 드높이기 위해, 혹은 요리인의 장인적 면모를 낭만화하기 위해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가 '실재인 사유' 것이다. 따라서 예술로서의 요리는 이미 규정된 범주나 기존의 개념으로 환원될  없다. 김환기의 추상화나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를 철학으로 환원할  없듯이, 작품으로서의 음식을 먹고 우리가 남기는 기술은  불완전할 것이다.  어떤 대단한 비평도 '가리킴' 이상의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의 경험은 하나의 단편적 사태에 불과하지 진리 체험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뭐든 함부로 설명하고 평가하고자 하는 비루한 욕구부터 폐기해야  것이다.  모든 시도가 예술을 한낱 소비재로 전락시킨다. 아무래도 그냥  마디면 족하다. 맛있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이것이 장인이자 예술가인 요리인들, 고되고 외로운 '좁은 ' 택한 쇼쿠닌들, '유한한 다수' 창조자들에게 바칠  있는  최고의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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