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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Nov 24. 2020

장애인 이해 교육 유감



작금 대한민국의 때늦은 PC유행에 딱히 열정적으로 동참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회가 최소한의 상식조차 결여된 사회라는 방증이 도처에 넘쳐나 침묵하고 살아갈 수가 없다. 하물며 공교육의 장에서조차 그렇다.

믿기 어렵지만 위 컨텐츠는 실제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에서 사용되는 공식적인 교육자료이다. 장애인 혐오를 멈추자니까 장애인을 무려 지구씩이나 지키는 영웅으로 만들어 놓았다. 장애인은 지구 정도는 지켜야만 비로소 가치있고 존중받을 만한 존재가 된다는 것인가.

편견을 없앤다는 것은, 장애인을 단지 몸이  불편할 뿐인, 우리와 다를  없는 그냥 사람으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제 공교육 현장에서 쓰이는 교육자료부터가 이미 장애인을 매우 이질적인 이방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것이 '병신'이라는 종래의 부정적 의미이든, 슈퍼히어로라는 초긍정적인 의미이든,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타자화라는 것을 아이들은 알아챌 도리가 없다. 교육자료가  모양  꼴이고, 이딴  교육자료라고 만든 어른들 수준이  고만고만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기존과 달리 훌륭하고 대단한 존재로 묘사해야만 마침내 공존이 가능한 것인가? ​장애인을 동등한  개인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치는  아니라, 장애라는 요소를 의도적으로 인지 누락하고 특별한 재능 따위에 집중하자는 , 도대체 무슨 이해이고 공존이고 편견 해소인가?

게다가 애니메이션  "장애인 어벤저스" 군단이 보여주는 초능력이란 하나같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그렇지 않던 아이들도 이걸 보고 나면 장애인, 병신이란 단어를 욕으로 쓰게 된다. ​

언어가 사고를 구성한다. 장애인 정신병자가 욕으로 사용되는 사회에서 건강한 이해나 존중이 가능할 리가 없다. 하물며 초등교육이 그걸 부추기고 있다.  3백만명의 초등학생이  만화를 수업시간에 시청했다고 하니, 3백만명의 새로운 장애인 혐오자가 생겨난 셈이다.

이보단 차라리 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 방식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생각이다. 지미와 티미는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지만 그건 다른 비장애인 아이들과 모든 등장인물들도 마찬가지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이 가진 장애라는 신체절 특성보다는 그들의 평범한 재능이나 성격, 언행에 초점을 맞춰 평가하고 대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공교육 자료 수준이 에릭 카트먼보다도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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