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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with Fugue Feb 23. 2021

카르보나라, 정통에 관한 고찰


이탈리아인들은 자국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높고, 음식을 통해 집단의 결속과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농업 비중이 높지 않은 산업구조임에도 음식 담론의 정치적 힘이 유독 강한 사회다. 즉 그들에게 음식이란 하나의 실존적 미학이자 '정치적인 것' 그 자체로, 음식을 통해 '우리'와 '그들'이 구분된다. 이탈리아 반도 내에서 뿐 아니라 세계로 뻗어나간 이민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ᆫ편 우리가 '정통 이탈리안' 하면 떠올리는 스테레오타입은 대개 19세기 이후에나 정립된 것들인데, 지역의 재료와 전통을 보전하기 위해, 혹은 세계화에 따른 타 식문화의 유입을 막으려는 자국우선주의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형식들이 대부분이다. 정통이라고 해서 중세 시대 요리법을 쭉 고수한다거나 수백년간 구전되는 비법소 같은 게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경제학적 계산과 정치적 의도 없이 순수한 애정만으로 보전될 수 있는 체계란 거의 없다. 이탈리아 음식의 요람이라 일컬어지는 시칠리아의 예를 들어보자. 지중해 최대의 섬인 시칠리아는 지리적 요충지로 고대부터 여러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고, 그에 따라 재배 작물과 식문화 역시 ᅡ이내믹한 변천 과정을 겪었다. 특히 이슬람 왕조 시대엔 아랍, 페르시아, 비잔틴 등 다양한 지역과 민족의 문화 양식이 통합되어 유럽 최고 수준의 세련된 음식문화를 자랑하였는데, 기록된 최초의 미식 비평 사례가 시칠리아에서 발견되었을 정도. 그러나 그건 지금의 이탈리아 요리와는 재료와 조리법부터가 전혀 다른 무엇이었다. 이후 천 년의 세월동안 ᅮ없이 많은 관습과 형식들이 생겨나거나 사라지며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우수하다고 영속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요컨대, 어떤 불멸의 '전통 방식'이라는 것이 고대-중세-근대ᄅ 거쳐 현대까지 단절 없이 이어지고 있다기보다는, 대내외 정세가 안정된 현대에 들어 많은 향토 단체나 생산자 조합 등이 발족하였고, 각 지역 공동체의 자국 식품에 대한 자부심과 전통 식단에 대한 애착을 기반으로 집합적인 재발굴과 고증, 품질 개선, 카테고리화가 이루어졌으며, 정부 기관에 로비 활동을 벌여 인증 제도 등을 만들고 표제를 붙인 결과물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정통(전통) 이탈리아 요리의 모습일 것이다. 음식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집요함이 그들 특유의 배타적 애향심인 '캄파닐리스모'에 기반한다고 보는 관점은 지나친 낭만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와인처럼 제도화되어 법적 보호를 받는 나폴리 피자 정도를 제외하면 엄밀히 어떤 요리법이 진짜 정통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문화란 부동산이나 지식재산권처럼 명확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무엇이 정통인가'라는 물음에, "그들에게 물어보라"고 답하고 싶다. 그 곳에서 나고 자라 살아가는 동시대 시민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와 방식에 귀기울여 귀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카르보나라에 크림을 넣으면 대다수 로마 사람들이 기분나빠 하기 때문에 안 넣는게 맞다는 이야기다. 베이컨이 아닌 관찰레나 판체타를 써야 한다고 그들이 주장하고 있고, 그 음식에 자신들의 지역적, 민족적 정체성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에 제3자의 주장보다 정당하고 강력할 수 있다. 순대에는 소금이냐, 막장이냐, 초장이냐? 셋 다 정답이다. 모두 우리가 먹는 일반적 방식이기 때문이다. 떡볶이 국물은 새로운 대안이지만 간장이나 케첩은 상상 못할 조합이다. 나는 정통이냐 아니냐를 바로 이런 동적 개념으로 규정한다. 타국과는 구별되는 자국만의 고유한 요리이면서, 전통에 기반한 재료와 조리법을 사용하고, 무엇보다 동시대 국민들에게 커먼센스인 형식일 것. 화풍 파스타나 뉴욕 피자처럼 아예 다른 문화권과 융합하여 재정립된 요리들도 나는 즐겨 먹고 그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나 본토 사람들이 먹지 않는 방식, 상상조차 하기 싫어하는 방식으로 요리해 놓고 정통이라 주장하면 과연 누가 납득하고 인정해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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